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33)
저는 아니겠지요?
녹은 쇠에서 나와 쇠를 삼킨다. 눈물겨운 사랑도 눈물겨운 배신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일어난다. 그래서 어느 것보다도 고맙고 아프다.
십자가를 앞둔 최후의 만찬자리, 음식을 먹던 중에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 곧 나와 함께 먹는 자가 나를 팔리라.”
주님이 말씀하시던 중 ‘진실로’라 하면 호흡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옷매무새를 가다듬듯 마음을 가다듬고 말씀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진실로’를 다른 성경은 ‘진정으로’(새번역), ‘분명히’(공동번역)로 옮겼다.
나를 파는 자가 너희 중의 하나라는 말을 듣는 제자들의 마음은 얼마나 두렵고 떨렸을까? “나는 아닙니다.” 하지 못하고, “저는 아니겠지요?” 했던 데서 제자들의 당혹감과 두려움이 읽힌다. 그들은 돌아가며 하나씩 하나씩 그렇게 말하기 시작했다.
문득 드는 생각이 있다. 유다 차례가 되었을 때 유다는 어떻게 했을까? 유다도 다른 제자들처럼 같은 말을 했을까?
예수님으로부터 ‘너희 중의 하나가 나를 팔리라’라는 말을 들었을 때 유다는 얼마나 놀랐을까? 아무도 모르게 종교지도자들을 찾아갔고, 예수를 넘겨주기로 거래했고 흥정했다. 모를 줄 알았다. 아무도 모르게 했으니까. 그런데 지금 예수는 ‘너희 중의 하나가 나를 팔리라’ 하지 않는가?
‘저는 아니겠지요?’라는 말을 유다도 했다면 그의 목소리는 어땠을까? 사시나무 떨 듯 떨었을까? 들릴락 말락 기어들어가는 개미 목소리였을까?
아니, 아니,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확신처럼 드는 생각이 있다. 그는 다른 어떤 제자보다도 자신 있게 그 말을 했을 것이다. 목소리도 컸고, 당당했을 것이다. 자신의 마음을 감추기 위해서는 더욱 더!
오늘도 우리는 같은 말을 한다.
설마, 저는 아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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