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숙의 글밭(33)
"어디 있어요?", 고독의 방으로부터 온 초대장
잠결에 놀란 듯 벌떡 일어난 초저녁잠에서 깬 아들이 걸어옵니다. 트실트실한 배를 벅벅 긁으며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눈도 못 뜨고
"아빠는?" / "아빠 방에"
"누나는?" / "누나 방에"
"엄마는?" / "엄마 여기 있네!"
그렇게 엄마한테 물어옵니다
아들이 어지간히 넉이 나갔었나 봅니다. 그런 아들의 모습에 살풋 웃음이 납니다. 저도 모르게 빠져든 초저녁잠이었지요. 으레 잠에서 깨면 아침인데, 학교에 가야할 시간이고요. 그런데 눈을 뜨니 창밖은 깜깜하고 집안은 어둑합니다. 잠에서 깬 무렵이 언제인지 깜깜하기만 할 뿐 도저히 알 수 없어 대략 난감했을 초저녁잠에서 깬 시간 밖의 시간.
해와 달이 교차하는 새벽과 저녁은 우리의 영혼이 말을 걸어오는 무렵이기도 합니다. 저녁답 노을처럼 아련한 제 어릴적 기억이 스칩니다. 초저녁 잠에서 깬 순간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허전함, 세상에 덜렁 혼자 남겨진 듯한 그 쓸쓸한 기분을.
아들에겐 얼른 떠오른 것이 가족이었나 봅니다. 굳이 궁금해서라기보다는 반사적으로 마음에 일어난 물음으로 다가옵니다. 마지막에 "엄마는?" 하면서 묻는 대상은 다름 아닌 엄마입니다.
아이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 사람이라면 누구나 거쳐가야 할 의식의 진화 과정이 있어 보입니다. 겉으로 드러난 모습은 제각각이라도 우리의 내면에서는 비슷한 흐름을 보이는 것이지요. 저 역시 지나온 과정이었고요.
생각 이전에 마음에서 저절로 일어난 물음. 반쯤 얼이 빠져서 엄마에게 묻는 질문의 마지막은 "엄마는?"입니다. 문득 아들의 물음이 선문답처럼 다가옵니다. 눈앞에 엄마를 두고도 엄마를 찾는.
앞으로도 아들이 살아가다가 혹은 길을 걸어가다가 문득 문득 내면에서 들려오는 질문이 있을 테지요. 우리 모두의 내면에는 진리의 영인 성령이 있으니까요. 불교에서는 불성, 그리고 영성, 본성이라고도 하는 그 내면의 소리. 어느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근원적 물음. 어느 고요한 순간 마음으로부터 나직이 들려올, "나는 어디 있어요?"
그리고 어느날엔가는 이런 물음도 들려올 테지요. "예수님, 어디 있어요?", "하나님, 어디 있어요?", "나는 누구인가요?" 생각 이전에 일어나는 마음의 소리. 문득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자녀가 걸어갈 인생길은 아무도 걸어가지 않은 새로운 길일테고요. 그런 삶의 여정에서 어느 순간 자녀에게 일어날 그 근원의 물음들을 떠올리면 아득해집니다. 대신 대답해 줄 엄마가 없을 때가 언젠가는 올 테니까요. 자녀가 오롯이 홀로 맞이해야 할 그 고독의 시간들.
엄마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기도 밖엔 없습니다.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지요. 그런 자녀의 삶 곁에는 항상 자연과 진리의 말씀과 좋은 스승과 벗이 함께 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자연의 소리 없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를. 하나님과 만나는 고요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묵묵히 그윽하게 익어가는 영혼이기를.
그런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깨어 있는 영혼이기를. 어느 날 고독의 방으로부터 온 초대장. 무심한 듯 잔잔한 그 좁은 길. 하나님, 또는 근원으로 향하는 그 조심스런 발걸음이 밀려가고 밀려오는 물결 아래로 깊이 흐르는 강물처럼 일상 속에서 유유히 흘러가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예수는 '무리를 작별하신 후에 기도하러 산으러 가시니라'(마가복음 6장4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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