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79)
좀 좋은 거울
고흐가 동생 테오와 나눈 편지 중에 거울 이야기가 있다. 지금이야 위대한 화가로 칭송과 사랑을 받지만, 살아생전 고흐는 지독한 가난과 외로움 속에서 살았다. 가난과 외로움이 그의 밥이었을 것이다. 그나마 형의 처지와 마음을 유일하게 알아주었던 동생 테오에게 편지를 쓰며 고흐는 어느 날 이렇게 쓴다.
“모델을 구하지 못해서 대신 내 얼굴을 그리기 위해 일부러 좀 좋은 거울을 샀다.”(1888년 9월)
고흐의 이 짧은 한 마디 말을 떠올릴 때면 나는 먹먹해진다. 비구름에 덮인 먼 산 보듯 막막해진다. 울컥, 마음 끝이 젖어온다.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는 절대의 고독과, 물감조차도 아껴야 하는 극한의 가난, 그런 상황에서도 놓을 수 없었던 그림, 그림은 고흐와 세상을 연결해주는 유일한 통로였을 것이다. 고흐에게는 그림이 유일한 숨구멍이었을 것이다.
모델을 구할 돈이 없어 대신 자기 얼굴을 그리려고 좀 좋은 거울을 산 사람, 그러면서도 그것조차 조심스러워 하는 고흐의 떨림이 오늘 우리에겐 없다. 고흐 그림 속에 담긴 근원이, 근원을 향한 그리움이나 절박함이 우리에게 없는 것은 ‘좀 좋은 거울’을 사는 가난함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너무 좋은 거울을 너무나 많이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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