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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

노란 손수건

by 한종호 2020. 2. 3.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91)

 

노란 손수건

 

헌신이 자발적이어야 하듯 분노도 자발적이어야 한다.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조장 위에 분노가 서면 안 된다. 그것은 분노의 정당함을 떠나 남의 조정을 받는 것일 뿐이다.

 

우한에서 비롯됐다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두려움은 바이러스의 전파 속도보다도 더 빠르게 번져가고 있다. 감염자가 다녀간 곳과 감염자와 접촉한 사람이 있는 곳은 한 순간에 절해고도(絶海孤島)가 된다. 누구도 다가가서는 안 되는 곳, 서둘러 문을 닫고 피해야 하는 곳으로 변한다. 현대판 나병과 다를 것이 없지 싶다. 목에 방울을 달고 다님으로 성한 이들을 피하게 해야 했던.

 

우한에 살던 교민들로서는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세상으로 통하는 모든 길이 막히고, 병의 진원지에 꼼짝없이 갇히게 되고 말았느니 날벼락도 그런 날벼락이 없었을 것이다. 멀리서 그 소식을 들어야 하는 가족들은 얼마나 애가 탔을까? 발만 동동 구르며 잠을 이룰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 중에 전세기를 띄워 그들을 고국으로 이송하는 계획이 발표되었다. 견디더라도 내 나라에서 견디는 것이 낫지, 지옥과 다름없을 그곳에서 어서 빨리 벗어나는 것이 필요하지, 천만다행이다 싶었다.


그런데 이어 들려온 소식들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런 선택 또한 정쟁의 도구로 삼으려는 이들은 좋은 먹잇감을 만난 듯 혐오와 증오를 쏟아냈고 불안감을 증폭하며 부추겼다. 그 정점에 있는 이가 가지고 있는 신앙이 목을 찌르는 가시처럼 고통스럽게 다가왔다.

 

그들이 머물 곳으로 정해진 아산과 진천도 난리가 났다. 곳곳에 현수막이 내붙었고, 경운기와 차량을 동원한 극렬한 반대가 벌어졌다. 차라리 나를 밟고 가라며 주민들이 바닥에 드러눕기도 했다. 곳곳에 내걸린 <우한폐렴 송환교민 수용 결사 반대>라는 현수막에는 보란 듯이 당명이 적혀 있기도 했다. 정해지는 과정에 아쉬움이 있었고, 그런 두려움이 누구에게 없을까 이해도 되지만, 그러기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님은 분명한 일이었다.

 

대체 어쩌라는 것인가, 그냥 우한에 남아서 살든지 죽든지 알아서 하라는 것인가, 정말로 정부가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손을 놓고 있엇다면 더욱 길길이 뛰며 입에 거품을 물었지 싶은 사람들이, 그들을 위한 일을 시작하자 비난을 쏟아놓다니 말이다. 나의 이익과 욕심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중요한 것이 없는 초라하고 가벼운 존재들을 눈으로 목격하게 된다.

 

 

 

그런 와중에 다시 들려온 소식들, <우한 교민 환영> 소식이었다. 적지 않은 이들이 우한에서 돌아온 이들을 격려하며 따뜻하게 맞이하고 있었다. 직접 손글씨를 써서 자신의 모습과 함께 사진을 올리기 시작했다. ‘우리가 아산이다(#We_are_Asan)’ 운동에 대해서도 아산 시민의 참여가 줄을 잇고 있다고 한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기는 법, 그런 따뜻한 마음이 격렬했던 반대를 누그러뜨리고 있다니 얼마나 다행인가 싶기도 하다.


기회가 주어져 가족들과 여행을 간다면 일부러라도 아산과 진천을 찾아가 그곳 주민들에게 고맙다고 인사라도 해야지 싶은 마음이 든다. (나는 방금 잘못 타이핑한 곳을 발견하고 고쳤다. ‘주민들에게’를 ‘주님들에게’로 쳤던 것이다. 단순한 실수였지만 그런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야말로 주님과 다름이 없다는 심정의 발로였는지도 모른다)

 

대문을 열 듯 마음을 열고 따뜻한 마음으로 환대하는 이들을 대할 때 문득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노란 손수건이다. “나는 당신을 받아들입니다, 얼마든지, 기꺼이요!” 그런 마음으로 참나무 가득 매달았던 노란 손수건!

 

오늘 이 땅의 교회가 해야 할 일 있다면 스스로 갇혀 있는 울타리를 걷어내고 노란 손수건을 가득 매다는 일 아닐까. 세상을 향해서, 이웃을 향해서 말이다. 노란 손수건이 바람에 나부끼는 예배당, 그런 예배당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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