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92)
가로등을 밝히는 것은
정릉교회 마당으로 들어서는 초입에는 콘크리트 기둥이 서 있다. 국민대와 길음역 사이의 대로변에서 빠져나와 청수장으로 올라가는 길, 또 한 번 가지가 갈라지듯 자칫하면 놓치기 쉬운 롯데리아를 끼고 우회전을 한 뒤 좁은 길을 따라 올라오다 만나게 되는 예배당으로 들어서는 초입, 전봇대 바로 옆 벽돌을 쌓아 만든 허름한 기둥이 서 있다. 하필이면 교회로 들어서며 제일 먼저 만나는 되는 것이 허름한 기둥일까 생각을 하다가, 기둥 위에 등을 세우기로 했다. 기둥을 헐거나 기둥을 단장하는 대신 택한 선택이었다. 비나 눈이 와도 괜찮은 등을 찾아 기둥 위에 세웠더니 보기가 그럴듯하다. 허름한 기둥 위에 등을 얹자 기둥은 그럴듯한 가로등 받침대가 되었다.
어둠이 내릴 때쯤이면 등에 불을 밝힌다. 예배가 있는 날이든 그렇지 않은 날이든 상관없이 불을 밝힌다. 기둥이 허름해서 그럴까, 등불은 오히려 환하게 빛을 발한다. 예배당 초입에 등을 달고 불을 밝히는 데는 이유가 있다. 웬만한 골목엔 가로등이 있다. 기둥 바로 앞에 서 있는 전봇대에도 가로등이 달려 있다. 그럼에도 기둥 위에 등을 얹고 불을 밝히는 것은 이웃들을 따뜻하게 맞이하고 싶기 때문이다. 하루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사람들, 늦은 시간까지 공부하고 돌아오는 학생들, 그들의 고단한 걸음을 따뜻하게 맞이하고 싶기 때문이다. 오늘도 수고했다고, 집으로 돌아가는 걸음 편안하라고 뭐라도 응원을 하고 싶기 때문이다.
계절이 바뀌면 해도 바뀐다. 여름 같으면 초저녁 같을 시간이 동지 무렵이 되면 사방이 어둠, 한밤중이다. 번거롭더라도 기둥 위 등불을 켜는 시간을 자주 조정하도록 한다. 그냥 두면 어둠이 다 내린 뒤에도 등은 불 꺼진 채로 흉물스럽게 서 있다. 하지만 불을 제 때 밝히면 누군가를 맞는 따뜻한 눈길이 된다. 그게 무슨 대단한 일일까 싶지만, 꺼진 등으로 이웃을 맞는 일은 없어야지 싶어 등을 살피고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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