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90)
나도 모르게
군인들이 끌고 간다. 모시고 가는 것과는 다르다. 재미 삼아 내리치는 채찍에도 뚝 뚝 살점은 떨어져 나간다. 피투성이 몰골은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흥미로운 눈요기일 뿐이다. 자주색 옷으로 갈아입히고 면류관을 씌운다. 희롱이다. 희롱은 당하는 자가 가장 먼저, 분명하게 느낀다. 갈대로 머리를 치며 침을 뱉는다. 속옷을 나눈다. 찢기엔 아까웠던 호지 않은 옷, 제비뽑기를 위해 속옷을 벗기는 순간은 발가벗겨지는 순간이다. 나를 가릴 것은 더 이상 아무 것도 없다. 양손과 발목에 박히는 못은 연한 살을 단숨에 꿰뚫고 들어와 뼈를 으스러뜨린다. 순간 나는 떨어지지 말아야 할 물건이 된다. 죄인들의 두목이라는 듯 두 강도 사이에 매단다.
악한 이들의 의도는 얼마나 교활하고 분명한지 설명이 필요 없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너부터 구원하라, 지나가는 사람으로부터 종교지도자들까지 할 수 있는 모든 조롱을 늘어놓는다. 조롱은 누군가의 가장 아픈 곳을 찌른다. 지축을 울리는 바윗덩어리처럼 조롱하는 모든 놈들을 짓뭉개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 마음을 찌르는 조롱들은 옆구리를 찌르는 창끝보다 아팠을 것이다.
그 모든 것 중에서 어느 것 한 가지만 주어졌어도 그 자리에 보이지 않는 제자들처럼 줄행랑을 쳤을 우리를 두고, 예수는 모든 것을 다 받는다. 불어난 계곡물처럼 걷잡을 수 없이 다가오는 모든 것들을 고스란히 받는다.
몰약을 탄 포도주가 전해진 것은 그나마 다행일 수 있었다. 정신을 혼미하게 하는 마취용 음료, 차라리 그렇게라도 고통을 덜 느낄 수 있다면 다행 아닐까 싶은데, 예수는 그것을 거절한다. 고난의 잔은 다 받아 마시면서도, 몰약을 탄 포도주는 받지도 않는다. 고통의 끝자락에 맨 정신으로 선다. 희미함에 기대 피하지 않는다. 고통과 수치가 크면 클수록 깨어 있는 정신으로 마주하여 받아들인다.
예배당에 나와 십자가를 눈으로만 바라보지 말자고, 십자가를 내가 지고 주를 따라간다 입술로만 말하지 말자고, 교인입네 십자가를 목에만 걸지 말자고, 고통과 수치의 십자가를 나도 지고 주님을 따라가자고 교우들에게 말할 때, 나도 모르게 두 눈이 젖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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