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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

자화상

by 한종호 2020. 2. 13.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98)

 

자화상


 
인우재를 다녀오는 길에 그림 한 점을 가져왔다. 오랫동안 인우재에 걸어두었던 그림인데, 비어 있는 시간이 많다보니 액자 안에 습기가 찼다. 아무래도 표구를 다시 하는 것이 좋겠다 싶었다. 먼지를 닦으며 그림을 마주하니 옛 일이 떠오른다.

오래 전 일이다. 김정권 형이 목회를 하던 신림교회를 찾은 일이 있다. 새해를 맞으며 드리는 임원헌신예배에 말씀을 나누기 위해서였다. 예배를 마쳤을 때, 정권 형이 화가 이야기를 했다. 인근에 젊은 화가가 사는데, 한 번 만나러 가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기꺼이 동행을 했고, 그렇게 김만근이라는 화가를 만나게 되었다.


수북이 쌓인 눈길을 뚫고 당도한 그의 집은 치악산 산자락에 자리하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보아도 허름하고 허술한 농가였다. 비어 있던 농가를 화실로 삼은 그는 놀랍게도 흙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흙으로 그림을 그리는 방법을 찾는데 5년의 세월이 걸렸다는데, 그가 보여주는 그림에는 박수근을 닮은 질박함이 가득 담겨 있었다. “아무리 추운 겨울밤이라 해도 방안에 촛불 하나만 켜두면 방안의 물이 얼지를 않는다.”는 말을 그 밤에 들었다. 필시 그것은 화가의 경험에서 나온 말이었을 것이다.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다시 그의 화실을 찾았을 때, 벽에 걸려 있는 그림 하나가 눈에 띄었다. 액자에도 넣지 않고 그냥 벽에 붙여 놓은 그림이었다. 물끄러미 그림을 바라보다가 그에게 물었다.

 

 “아마도 자화상인가 봐요?”


이야기를 듣고 그는 흠칫 놀라더니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화실이 너무 조용하여 조용함에 눌릴 것 같을 때면 그 그림을 쳐다본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어디선가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는 것이었다.

 

 

 

 

그림 속엔 누군가가 고함을 지르는 모습이 담겨 있다. 통곡을 하는 것 같기도 한데, 뒤로 젖힌 고개 탓에 얼굴의 중심은 입이 됐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동굴처럼 시커먼 입을 크게 벌리고 있다. 맨 꼭대기에 자리 잡은 두 눈은 퉁 퉁 부은 듯이 보인다. 얼굴의 윤곽은 어쩌면 눈물이 흘러내린 자국처럼도 보였다. 거칠게 붓질을 했지만 그럴수록 내게는 살아있는 표정으로 다가왔다. 망설이지 않고 거침없이 그린 그림이었다.

 

이야기를 마치고 돌아설 때 그는 그림을 돌돌 말아 내게 건네주었다. 거듭 사양을 했지만, 그림을 알아본 사람이 목사님이니 그림의 주인은 목사님이라며 끝까지 그림을 돌려받지 않았다. 그러면서 표구를 할 때는 큰 액자에 담는 것이 그림과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조언을 덧붙였다. 그런 사연으로 갖게 된 그림이었다.

 

그림의 주인공인 화가는 지금 어디에서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지금도 고요함을 견디며 자화상을 그리고 있을까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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