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99)
종들의 모임
새해 들어 시작한 모임 중에 ‘신앙강좌’가 있다. 한 달에 한 번 외부 강사를 초청하여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믿음의 보편성과 깊이를 얻을 수 있었으면 하는 기대가 있다.
두 번째 시간, 지강유철 전도사님으로부터 장기려 선생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장기려 그 사람>의 저자, 누구보다 장기려 선생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줄 적임자라 여겨졌다. 거기에 더해 장기려를 아는 이들이 안타까울 만큼 적었다.
강의 전 잠깐 차 한 잔을 나누는 시간, 책을 읽으며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장기려 선생이 교회를 떠나 마지막으로 향했던 ‘종들의 모임’이 어떤 곳인지가 궁금했었다. 들려준 이야기 중 마음 깊이 와 닿은 대목이 있었다.
장기려는 대뜸 기존의 교회를 등지고 종들의 모임을 향하지 않았다. 적잖은 고민의 시간이 있었다. 그러던 중 고민의 종지부를 찍을 일이 있었다. 장기려 선생이 태국을 방문한 것은 막사이사이상 수상자들의 모임에 참석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관심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외국에 있는 종들의 모임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태국에서 한 종들의 모임에 속한 자를 만났는데, 그는 천막 안에서 살고 있었다. 천막의 절반은 집, 절반은 사람들을 만나는 곳으로 삼고 50년을 살아온 터였다. 한 자리에서 50년을 살아왔다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허름하고 보잘 것 없는 모습이었다.
50년간 몇 명을 전도했는지를 물었을 때, 종이 들려준 대답은 너무도 뜻밖이었다. 두 명이라는 대답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50년 활동에 단 두 명,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어 그것은 실패가 아니냐고 물었을 때 종은 분명하게 대답을 했단다.
“저는 결코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제게 이곳에서 살라고 말씀하셨고, 저는 그동안 하나님이 허락하신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단 두 명을 전도했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뜻을 따랐던 것이기에 저는 충분합니다.”
그 일이 장기려를 종들의 모임으로 향하게 했던 결정적인 계기였다고 했다. 50년에 단 두 명을 전도해도 충분히 의미 있는 삶, 우리가 얼마나 숫자나 규모에 매몰되어 있는지를 극명하게 돌아보게 하는 일이었다. 의미 있는 삶을 살되 시간을 잊는 것, 그것이 종이 걸어가야 할 마땅한 길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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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답글
외국에선 two by twos 라고도 불립니다.\
1800년대 후반 윌리엄어바인이 창시자구요
검색해보시면 충격적인 내용들이 나옵니다.
유투브에서 two by twos 보시면..호주방송에서 충격적인 이들의 만행을 다룹니다.
아름다운 단체라기엔 너무 지저분한 내용들이 나옵니다
https://cafe.naver.com/anyquestion/96143
https://blog.naver.com/wec2075/222719107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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