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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

그들 자신의 죽음을 주십시오

by 한종호 2020. 2. 15.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00)

 

그들 자신의 죽음을 주십시오
 

마음으로 가는 길이 진짜 길이다. 단강으로 가는 길은 가르마처럼 훤하다.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달리다가 여주에서 빠져나가 점동을 거쳐 남한강을 건너면 강원도의 초입 부론을 만난다. 부론을 벗어나면 이내 갈림길을 만나게 되는데, 오른쪽을 택하면 강가 길을 따라 가고, 왼쪽을 택하면 자작 고개를 넘어간다. 그렇다고 갈림길에서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가 없는 것은 어느 길을 택해도 길은 정산에서 다시 만나 단강으로 향하기 때문이다.

 

부론에서 자작 고개 쪽으로 향하다 보면 길 왼쪽 편에 산수골이라는 마을이 있다. 산수골엔 언제부턴가 ‘꿈꾸는 산수골’이 자리를 잡았다. 은퇴를 한 이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꿈꾸는 산수골을 이루었다.

 

 

 


그 중심에는 이도형 씨가 있다. 얼굴을 보면 영락없이 맘씨 좋은 이웃집 아저씨인데, 그는 어색할 것도 없이 자신을 ‘좌파’라 소개한다. 한전 등에서 노조활동을 한 이력이 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의미 있는 삶일까를 고민했고, 꿈꾸는 산수골을 시작했다.

 

산수골엔 콩 할배, 론 할배, 꽃 할배, 짱 할배 등 몇 몇 할배들이 모여 산다. 꿈꾸는 산수골을 처음으로 찾던 날, 꿈꾸는 산수골이 꿈꾸는 꿈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의 꿈은 의외로 단순했고, 소박했다. 집에서 죽자는 것이었다.

 

나이가 들면 약해져 병이 들고 병이 들면 병원으로 간다. 그리고는 병원 침대에 누워서 생을 마감한다. 생을 마감하는 과정도 대개가 비슷하다. 수많은 의료기기의 도움 속에서 겨우 숨을 쉬다가 그것조차 힘에 부치면 세상을 떠난다.


산수골의 꿈은 거기에서 시작이 된다. 이 세상을 떠나는 자리가 병원이 아니라 산수골이 되게 하자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끝까지 돌보다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바라보는 가운데 마지막 눈을 감게 하자는 것이 꿈이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할배들은 하루하루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삶을 살아간다.

 

꿈꾸는 산수골의 꿈은 릴케의 <기도시집> 한 구절을 닮았다. ‘오 주여, 그들 하나하나에게 그들 자신의 죽음을 주십시오. 그가 사랑, 의미, 그리고 고난을 겪은 삶에서 가버리는 그러한 죽음을’이라 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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