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숙의 글밭(86)
못다한 말들이 가슴에 소복이 쌓이면
못다한 말들이 가슴에 소복이 쌓이면, 발이 푹푹 빠지는 눈밭을 걸어가는 것만 같습니다. 앞으로 단 한 걸음 내딛기도, 단 한 줄의 말을 꺼내기에도 힘에 부칩니다. 그럴때면, 말 할 줄을 몰라서 하염없이 바라보던 유년 시절의 하늘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언제나 푸른빛 가을 하늘입니다. 그대로 밖으로 향하던 시선을 안으로 거둡니다.
가슴 한 복판에 예수의 마음을 품고서, 한 점 해처럼 달처럼 별빛처럼 떠올려봅니다. 추운 날 아침, 십원짜리 동전을 들고서 뛰어 올라가던 산비탈길 점방 앞에 발그레한 연탄불처럼 예수는 언제나 따뜻하게 반깁니다. 얼었던 눈이 녹듯, 메마른 샘에서 물이 차오르듯 울컥 흐릅니다. 그대로 눈물이 되어 흐르면, 한 순간 나는 봄이 됩니다.
그 샘물로 돌처럼 단단해진 가슴에 쌀알 같은 말들을 말갛게 씻어서 눈물로 퉁퉁 불립니다. 밥도 잘 못 짓는 제가, 그 샘물로 오늘도 글을 짓습니다. 내 안의 배고픔보다 더 커다란 허기를 채워줄 수 있는 건, 말씀으로 계시는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한 줄의 첫 문장이 마중물이 되어서 나오면 그 다음 글줄로 흐릅니다. 이어서 가느다란 물줄기로 흘러 나오는 말들을 새롭게 만나게 됩니다. 말들을 그대로 받아쓰기 하듯 옮겨 적으면 글이 됩니다.
글은 새로운 길이 됩니다. 한 생각, 한 마음을 먹는 일이 스스로에게도 천금보다 무거워야 하는 이유입니다. 어디까지나 선택의 기준은 자연과 진리의 몸인 예수의 마음과 제 자신의 양심입니다. 진리의 영인 성령은 달리 말하면 양심으로 이 세상 어느 누구의 가슴 속에나 공평하게 주신 복된 선물이니까요. 누구도 그 자신이 양심의 심판으로부터 자유로운 자가 없을 거라는 말씀이 그림자처럼 따릅니다.
살아오면서 가슴 속에 오랜동안 맴도는 이야기를 받아서 그대로 옮겨 적으면 시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제가 먼저 한 말은 아니지만, 공감이 되는 말입니다. 가슴 속 깊이 있는 진실된 목소리가 내 앞길에 걸음마다 한 생각마다 하나 하나 놓이는 징검돌이 된다면. 조심스레 그 징검돌을 밟으며 그 어떤 것보다도 내 눈을 가리는 사리사욕을 내려놓고 유년 시절의 그 맑은 하늘을 볼 수 있다면. 아무것도 구하지 않고서 오로지 하나님과 예수의 이름만 부르는 그 말없는 침묵의 기도를 드릴 수 있다면. 이 세상에도 비로소 따뜻한 봄이 올 테지요.
오래전부터 집에서 받아보는 신문이 네 곳이 됩니다. 아침이면 마당에 던져 놓고 가는 신문 뭉치를 두고 적잖이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언젠가부터 종이 신문을 안 보게 되면서 펼치지도 못하고 대문 밖에 내놓는 신문 뭉치는 그대로 폐지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줄 알면서도 여러 달 동안 신문을 선뜻 끊지 못하는 이유는 마을 사람들이 모두 잠든 새벽에 신문을 배달하시고 가는 분과 폐지가 된 신문을 거두어 수레에 싣고 가시는 분들의 얼굴이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게으른 일인 줄 알면서도 선뜻 털어내지 못하는 게으름들이 일상 속에도 먼지처럼 쌓여갑니다. 마음의 일에 취중한다는 핑계로 말도 안되는 이런 소소한 일들이 일어나는 일상을 오늘도 살아가고 있습니다. 떨어진 단풍잎을 오래 두고 보고 싶은 마음에 선뜻 빗자루로 쓸어내지 못하는 그 마음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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