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복직관(至福直觀)

신동숙의 글밭(83)

 

지복직관(至福直觀)

 

 

다양한 세상에서 내가 의지하는 것은 진리와 나 자신의 직관이다. 언제나 자연을 보며 호흡을 고르고, 모든 관계의 첫걸음은 사람의 말을 믿는 일이다. 어느 누군가로부터 불신이 생길지라도 언제나 우선 사람의 말을 믿는다. 그 이유는 상처나 과거의 기억 때문에, 나를 보호하려는 어린 마음으로 내 눈에 색안경을 끼게 되면 정말로 좋은 얼굴이 내 눈 앞에 나타난다 할지라도, 있는 그대로 알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그처럼 애석한 일도 없을 테니까. 거짓된 마음으로 다가오는 경우에도 그의 말을 믿는 일이 우선이 된다. 그런 경우엔 때가 되면, 말을 믿는 징검돌이 튼튼해서 저절로 모든 게 밝혀지게 되어 있는 법이다. 상대의 말이 바뀜으로 인해서.

 

나에게 진리는 예수다. 오래 전부터 마음과 관련된 서적들을 읽으며 다양한 영성인들을 책으로 만났지만, 대부분이 늘 한 조각의 결핍은 있었다. 하지만, 성경에서 본 예수의 마음은 비로소 온전한 마음이었다.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실재로 다가왔었다. 혼탁한 세상에서 흔들릴 때면, 나는 고요히 예수를 마음에 품는다. 그러면 운전을 하다가도 가슴 속에선 뜨거운 울음이 차오른다. 샘물에 물이 차오르듯 예수는 그렇게 생명수가 된다. 진리의 몸이 된 그 마음의 온전함으로. 그렇게 말갛게 씻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려고 한다. 하지만, 한 순간 씻긴 눈도 돌아서면 어두워지게 되어 있다. 밥을 먹고 난 후 또 배가 고파 오고 물을 마신 후 다시 목이 마르듯, 마음과 영혼의 갈증도 호흡처럼 강물처럼 쉼없이 이어지는 흐름 속에 살아가고 있다.

 

 

 

가끔 주변을 보면, 삶이 바빠서 때론 마음이 머물지 못하고 바빠서 스스로가 잡아야 할 마음의 중심을 외부에 의지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아니면 돈이 기준이 되어 살아간다. 그 만큼 영혼의 갈증은 바깥에서 대상을 찾아 헤매게 된다. 자녀, 이성, 재산, 학력, 소유와 중독의 형태로 흐르기가 쉽다. 하지만 세상의 그 어떤 성취도 내 영혼에 안식을 주진 못했다. 흔히 저지르는 실수로 권위와 대중에 의지하는 모습을 본다. 권위가 있거나 지성과 영성을 갖춘 누군가에게 묻고 자문을 구하는 방법은 현명한 방법 중에 하나가 될 수 있다. 그렇게 잠시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문제는 그 물음의 출발점과 선택의 최종점이 되는 중심점이 또한 나 자신이라는 사실이다. 누군가에게 물어본다고 할지라도 더 섬세하게 결국은 진리와 나 자신이 기준점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거기서 중심을 잃어버리고 바깥 시선과 권위와 대중에 의지하게 되는 일은 안타까운 일이다.

 

첫인상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냐고 묻는다면, 나는 첫인상이 그 영혼의 참모습일 때가 많았다. '나'라는 거울에 한 순간 비친 상대의 모습이 첫인상이 되니까. 이어서 따라오는 생각과 권위와 소문과 대중과 물질과 눈을 현혹하는 그 모든 것들은 내 마음 거울에 비친 첫인상의 그림자일 뿐이다. 물론 나 스스로가 색안경을 낀다거나 시선이 혼탁해져서 대상을 온전히 본다는 일이 쉽지는 않지만, 마냥 어려운 일은 아니다. 내 눈을 씻겨내는 일을 밥 먹듯이 한다면 그대로 일상이 된다. 그 일을 위해서 스스로 기울이는 노력이 자연에 가까이 진리 안에서 마음에 가까이 더 다가가는 일이다. 내 몸과 시선을 수시로 그렇게 자연과 예수의 마음에 둔다. 그리고 시를 쓰는 일이다.

 

직관을 밝히는 일은 행복과도 직결된다. 나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또는 내겐 주신 소명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선 그 만큼 자기 스스로를 알아야 한다. 내게 선물처럼 다가오는 매 순간에 진리를 등불 삼고, 나 자신을 등불 삼고서. 내겐 진리의 몸이 되신 예수가 혼탁해지려는 시선을 눈물로 씻겨 주는 맑은 샘물, 내 영혼의 생명수가 되고 등불이 된다. 예수는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첫 시선이자 첫 발걸음이다. 수도원의 벽에 걸려 있는 달력에 '일 하기 전에 기도하라'는 말씀이 그대로 내 발에 등불이 된다.

 

'너희는 멈추고 하나님 나를 알라', 지복직관(至福直觀), 사전에는 하나님을 직접 뵈옵는 천국의 행복한 상태를 말한다고 적혀 있다. 내게 있어 일상 속에서 틈틈이 고요히 마음이 머물러, 진리의 몸인 예수를 가슴에 품고서 고독과 침묵의 기도를 드리는 사랑방이 된다. 홀로 산으로 오르시어 하나님을 만나던 예수의 고독에 닿아 있다. 흐르는 물, 나무, 작은 풀꽃, 구름, 한 점 별빛, 해과 달와 하늘과 산이 마음을 고르게 하는 자연의 벗이다. 자연을 보며 거칠어진 호흡과 마음과 생각의 결을, 밥을 먹듯 물을 마시듯 숨을 쉬듯, 수시로 고르는 일이 내겐 일상이다. 창문으로 보이는 조각 하늘이, 보도블럭 틈새에 돋은 풀꽃이 언제나 손 닿는 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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