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두런두런(18)
소주병 꽃꽂이
수요일 저녁예배 시간, 설교 시간에 들어온 광철 씨의 손엔 꽃병이 들려 있었다. 기도도 드리지 않은 채 성큼 제단으로 나온 -사실은 두어 걸음이면 되지만- 그는 “전도사님, 여기 꽃 있어요.” 하며 꽃병을 내밀었다.
산에 들에 피어난 꽃을 한 묶음 꺾어 병에 담아온 것이었다. 잠시 설교가 중단되긴 했지만 그 순박한 마음을 웃음으로 받아 제단 한 쪽에 올려놓았다.
그런데 올려놓고 보니 꽃을 담아온 병이 다름 아닌 소주병이었다. ‘백합 소주’였다. 모두들 악의 없이 웃었다. 혹 광철 씨 마음에 상처가 되지 않도록 좋게 말하며 나도 함께 웃었지만 마음 찡하니 울려오는 게 있었다.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꽃꽂이는 이런 게 아닐까 싶었던 것이다. 시골 전도사 한 달 생활비를 웃도는 액수로 매주 넓은 제단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도시 교회의 꽃꽂이에 비한다면 이건 돈 한 푼 안 들인 더없이 초라한 것일 수 있지만, 그래도 하나님은 이 들꽃을 더 좋아하시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남의 집 일해주다가 잠시 땀을 닦으며 나무 그늘에 앉아 한 잔씩 나눠 마신 그 병에 사방 피어난 꽃들을 꺾어 담아 바쳤다면, 이보다 꾸밈없는 정성이 어디 있을까 싶었다.
-하나님, 소주병이라고 책하진 마십시오. 많은 시간 술기운 의지해 일하는 이곳에서는 친숙한 병이랍니다. 물주며 가지 치며 화원에서 정성스레 가꾸진 않았지만 비로 이슬로 당신이 키우신 꽃 그냥 드리니 그냥 받아주소서. 행여 정성 부족하다 야단치진 마소서.
예배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 소주병에 담아 온 것이 미안한 듯 손을 잡는 광철 씨에게 “아니에요, 하나님이 정말 기뻐하셨을 거예요.” 거듭 거듭 말했다. 오늘 바친 들꽃처럼 수수하고 이름 모를 착한 여자를 만나, 부디 올핸 하나님의 은총으로 노총각 신세를 벗을 수 있기를 빌며.
메마른 땅에 단비를 내리시듯
비가 오셔야 한다고, 새벽 기도를 하던 최일용 성도는 울먹이며 기도를 했다. 담배 밭에 비료를 줬는데 오늘마저 비가 안 오면 담배가 모두 타죽고 말 거라고 애원하듯 울먹였다. 이러단 모판마저 모두 타죽고 말 것 같다는 이야기를 준이 아버지를 통해 듣긴 했지만 이렇게 다급한 줄은 몰랐다.
마루에 앉아 아침을 먹는데 후드득후드득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그래 와라, 신나게 좀 와라’ 밥을 먹으면서도 눈길은 비로 갔다. 그러나 잠시 후 비가 그치고 날이 갠다.
아침상을 물리고 마루에 앉아 하늘을 쳐다보며 어린애 억지 부리듯 항의를 한다.
“하나님, 그것 갖고 될 줄 아세요? 어림없어요. 하나님 노릇 하기가 그리 쉬울 줄 아십니까? 하나님 체면이 서려면 훨씬 많은 비가 와야 한다구요. 아시겠어요?”
어리석음을 안다. 그런 투정의 어리석음을 어찌 모를까. 그러나 그건 말장난이 아니었다. 일손 멈추고 비 그친 하늘 안타까이 쳐다 볼 마을 사람들의 안타까운 심정일 뿐이다.
하나님도 투정엔 약한 모양이다. 하늘이 다시 어두워지기 시작하더니 굵은 비가 저녁 늦게까지 무섭게 왔다. 낮엔 우산도 없이 저수지에 올라가 쫄딱 비를 맞았는데, 나도 모르게 찬송이 터져 나왔다.
“가물어 메마른 땅에 단비를 내리시듯 성령의 단비를 부어 새 생명 주옵소서.”
찬송 끝에 두 눈이 뜨겁다. 이 해갈의 기쁨이라니! 젖은 머리 사이론 빗물이 아니라 님의 따뜻한 사랑이 쉼 없이 흘러내렸다.
<봄>
아무도 몰래
하나님이 푸른 빛 빛깔을 풀고 계시다
모두가 잠든 밤
혹은 햇살에 섞어
조금씩
조금씩
풀고 계시다
땅이 그걸 안다
하늘만 바라고 사는 땅
제일 먼저
땅이 안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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