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45)
소 발자국에 고인 물처럼
최근에 교우 장례가 두 번 있었다. 목회를 하며 교우 장례를 치르는 것이야 늘 있는 일이지만, 이번엔 남달랐다. 두 장례 모두 생각하지 못한 장례였기 때문이다.
한 교우는 67세, 건강하게 잘 지내던 권사님이었다. 생각지 않은 곳에서 쓰러진 권사님을 너무 늦게야 발견한 것이 문제였다. 결국 권사님은 장기 기증을 선택하고 우리 곁을 떠났다.
또 한 사람은 집사님의 남편이었다. 40세, 믿어지지 않는 나이였다. 특별한 지병이 있었던 것도 아니라는데, 갑자기 심장에 마비가 왔다. 눈물만 흘릴 뿐 가족들은 모두 일어난 일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두 분의 장례를 치르며 내내 떠올랐던 것은 조선시대 시인 박은의 시였다. 평생 농사를 지으면 살자고 약속한 아내가 25살 나이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을 때 그 슬픔을 노래한 시의 한 구절이었다.
'인명기능구, 이갈여우잠'(人命豈能久, 亦碣如牛暫)
'사람의 목숨이란 게 어찌 오래 가랴, 소 발자국에 고인 물처럼 쉬 마를 테지' 하는 뜻이다.
소나기가 쏟아지면 뚜벅뚜벅 걸어간 소 발자국에도 물이 고인다. 이내 소나기 그치고 볕이 쨍하고 나면 소 발자국에 고였던 물은 이내 마르고 만다. 시인의 슬픔이 고스란히 전해져 마음이 아프다. 우리의 삶이란 그렇게도 덧없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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