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52)
더 큰 믿음, 더 큰 사랑
말다툼을 하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다. 어차피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가는 것이니까. 하지만 내 생각에 붙잡혀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을 비난하거나 비하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할 수가 없겠다. 짧은 생각을 털어놓는 이 글도 부디 그런 것이 아니기를.
코로나 바이러스를 이겨내기 위해 범세계적으로, 범국가적으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시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하여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동참하고 있다.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로 교회도 같은 요청을 받고 있다. 그것을 종교탄압으로 몰아가는 것은 우리는 특별하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우쭐함일 수 있다.
정부와 사회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함께 모여 드리는 예배를 강행하는 이들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말씀을 내세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전제하고 싶은 것이 두 가지 있다. 가정에서 드리는 예배는 예배가 아닐까 하는 것과, 과연 예수님은 안식일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였는가 하는 것이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안식일 규정이 담긴 율법 안에는 이번 일과 관련하여 우리가 돌아볼 만한 부분이 있다. 누구라도 부정한 병에 걸리면 성전을 찾을 수 없었고, 다른 사람들과의 접촉도 허락되지 않았다. 부정한 자를 접촉하면 접촉한 사람도 부정해진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생리 중인 여성에게도 같은 규정을 적용했다. 부정하다고 여긴 병 중에는 전염성이 강한 병도 있었다.
이런 혼란과 염려 중에도 예배당에 모여 예배를 드리는 것은 대단한 믿음이자 용기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우리를 바라보는 이웃들도 과연 같은 생각을 할까? 교회는 교인들을 위해 존재하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세상의 구원을 위해 존재를 한다. 지금을 위해서도 존재하지만, 미래를 위해서도 존재해야 한다.
이웃과 사회를 떠난 교회는 존재가치를 잃고 만다. 우리는 ‘세상의’ 소금으로 부름 받았지, ‘교회의’ 소금으로 부름 받은 것이 아니다. 이웃과 사회를 무시한 결과가 어떤 것이었는지는 이미 ‘신천지’가 충분히 보여 주었지 싶다. 그렇지 않아도 교회가 한국사회 속에서 외딴섬처럼 고립되어 가고 있던 차에 사회적 거리두기를 무시하고 예배를 강행하는 것은, 교회를 바라보는 그 어떤 시선이나 의견도 우리에게는 중요할 것이 없다는 선언처럼 다가온다. 이런 일을 경험한다면 이 일이 지나가고 난 뒤 교회가 아무리 ‘사랑’을 외쳐도 세상은 더 이상 그 말을 이해하지도 받아들이지도 않을 것이다.
함께 모여 드리는 예배를 가정예배로 대신하는 것의 의미는 자명하다. 더 큰 사랑, 더 큰 믿음이다. 어려움 속에서도 이웃과 함께 하겠다는 더 큰 사랑이요, 일상의 삶속에서 스스로 믿음을 지키겠다는 더 큰 믿음이다.
이 문제를 두고 다투고 싶은 마음 조금도 없다. 다만 내 생각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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