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숙의 글밭(128)
핸드폰 안에도 양심이 살고 있어요
집 밖에선 코로나19 바이러스와 전쟁 중이고, 집 안에선 자녀들 손 안에 든 핸드폰과 전쟁 중입니다. 바이러스와 핸드폰 속의 온라인 세상, 둘 다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들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예수처럼, 진리의 성령처럼, 부활하신 예수가 공평하게 주고 가신 양심처럼, 이 세상에서 한 순간도 사라진 적 없는 바람처럼, 보이지 않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바이러스와 핸드폰 속 온라인 세상은, 없는 듯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생명체들입니다.
요즘 내내 자유로워야 할 양심이 가볍지 않고 바윗돌을 얹은 듯 무거운 이유를 곰곰이 헤아려 봅니다. 풀리지 않는 체증처럼 답답한 마음을 스스로 헤집어 봅니다. 그 답은 마음 밖에서나 타인이 아닌, 언제나 제 마음에 비친 스스로의 내면에서 찾으려는 게 그 시작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제 마음이 올록볼록 거울이 아닌, 되도록이면 왜곡된 굴곡이 적어야 합니다. 그리고 스스로가 투명한 유리창처럼 가능한한 맑으려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저는 언제나 하늘을 바라봅니다. 흐르는 물에 마음을 비추어 봅니다. 이제는 눈을 감아도 보이는 산에 나무를 보고, 보도블럭 틈새에 핀 작은 풀꽃에도 제 마음을 수시로 비추어 봅니다. 그러다 보면 풀잎에 앉은 투명한 이슬 앞에서도 경건해집니다.
자연 속에서 제 자신이 먼저 제 발로 바로 서려는 일이 이 세상의 사랑과 평화를 위한 첫걸음임을 늘 잊지 않으려 합니다. 자연에 가까이 마음에 가까이 선택할 수록 나중에 후회를 덜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선현의 말씀을 제 어둔 가슴에 별빛처럼 떠올립니다. 자연이 들려 주는 경전의 말씀은 언제나 첫 마음, 근본, 본질, 양심을 가리키고 있으니까요.
세계 곳곳에서 늘어나고 있는 확진자들을 감당키 버거운 의료진들의 마음이 그래도 제가 느끼는 무게감보다는 더 무거울 것입니다. 몸과 마음과 목숨을 다해서 수고하시는 모든 분들의 건강과 평안을 위한 지지와 응원과 도움의 손길들이 흐르는 강물처럼 이어지기를 소망합니다. 저는 그에 비해서 주로 자녀들과 집 안에서 생활하다 보니, 더 늦잠을 자고 더 많은 밥을 먹고 몸은 더 편한 생활을 하고 있지만, 저도 사람이다 보니 마음은 어쩔 수 없이 세상과 깊은 연대감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어릴 적 골목에서 동무들과 뛰어 놀며, 작은 마음이 한껏 하늘을 날던 어린시절이 자주 생각납니다. 집 안에 있던 기억은 희미해도, 옆집으로 모래 놀이터로 골목으로 뒷산으로 놀러 다니느라 하루해가 짧았던 시절을 살았습니다. 자연 속에서 골목에서 뛰놀던 그때는 그게 행복인 줄도 몰랐지만, 그처럼 행복했던 시절을 떠올리다 보면, 집 안에 갇혀서 핸드폰과 컴퓨터만 들여다 보려는 어린 자녀들에게 뭔가 커다란 몹쓸 죄를 짓고 있다는 마음까지 듭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어디서부터 바로 잡아야 할 지 막막하지만,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으니까요. 세상의 흐름을 바라보며 또 깊은 소용돌이 속을 있는 그대로 보기 위한, 배움과 사색과 기도의 끈을 놓지 않으려 합니다. 물질의 풍요를 위해서 숨가쁘게 앞만 보며 달려온, 경제 성장과 기술과 과학과 자본대중문화의 발전이 부려 놓은, 산업쓰레기와 코로나19 바이러스와 핸드폰 중독과 온라인 범죄와 근본과 본질의 양심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모든 비본질적인 현상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 합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우리네 어른들의 옛 말씀이 가슴 속에서 여린 숨을 쉽니다. 이 답답한 봄날에도 시멘트 바닥 돌 틈을 뚫고 피어 올라오는 민들레와 냉이꽃이 웃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연둣빛 싹이 오르는 뒷산과 강변에 풀들은 그 어디라도 제 발을 딛고 피어납니다. 바윗돌을 부스러뜨리며 피어나는 모습이 착하기만 합니다.
요즘 유튜브에서 유행하는 달고나 커피를 본 딸아이는 밤잠도 안자고 달고나 커피를 만든다며 커피 가루를 휘젓고 있습니다. 보면 본 대로 하고픈 게 사람의 마음이니까요. 음식 먹방 채널에서 간장 게장을 본 아들은 간장 게장을 사달라며 아빠를 조릅니다. 보면 본 대로 하고픈 게 사람의 마음이니까요.
자라나는 아이들의 눈과 의식과 마음을 온통 빼앗는 핸드폰 안에 온라인 세상을, 엄마는 바다처럼 하늘처럼 바라봅니다. 망망대해와 망망대천이라 하더래도 그곳에도 별처럼 꽃처럼 선한 생명들이 살고 있을 테니까요. 이제는 온라인 개학으로 학업까지 핸드폰과 컴퓨터 안에 온라인 세상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우리의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씨앗처럼 심어 주고픈 하나가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가 하늘로 오르시면서 꼭 한 가지를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것과 같은 양심입니다. 어느 누구에게나 글을 아는 이나 모르는 이나, 이방인이나 타종교인이나, 믿음이 있는 자나 없는 자나, 살아 있는 모든 사람들의 가슴마다 공평하게 주신 양심입니다.
마음이 답답하고 무너지려 주저앉으려는, 혼돈과 어둠 속에서 한 점 별빛처럼 빛나는 양심. 바윗돌을 깨부수어도 착하다 용하다 칭찬 받는 한 송이 꽃과 어린 소나무처럼 푸른 양심. 탐욕과 어리석음의 구름에 잠시 가려져 있더래도, 하늘을 가린 부끄러운 제 손바닥 하나 스스로 치울 수 있다면 비로소 드러나는 맑은 하늘 같은 양심을.
빕빕빕 코로나 19 바이러스와 관련해서 수시로 울리던 핸드폰 비상벨 소리는 전국적으로 어느 누구에게서나 평등하게 울렸습니다. 그로인해 내 손 안에 있는 핸드폰이 비밀스러운 독립된 개체가 아님을 거듭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양심의 경종처럼 빕빕빕 소리를 울리게 하는, 양심의 별빛처럼 빛빛빛으로 빛나는, 하나의 중앙 통제 시스템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마치 우리들의 가슴에 심어주신 양심으로 통제하시려는 하나님 사랑과 지혜의 방식과 닮아 있는 듯합니다. 내 손 안에 든 핸드폰과 컴퓨터의 온라인 세상은 결코 혼자만의 사적인 영역이 아님을 자녀들에게 얘기해 주고 있습니다.
매 순간 다가오는 혼돈과 어둔 마음 속에서 저 멀리 빛나는 한 점 별빛 같은 양심을 바라볼 수 있기를. 하나님과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 하신 예수의 말씀을 등불처럼 떠올릴 수 있기를. 예수를 품는 가슴마다 샘물처럼 울컥 눈물이 흐르면 흘러 넘쳐 세상으로 흐르는 물길이 나서 생명을 적실 수 있기를. 보이는 세상과 보이지 않는 온라인 세상의 모든 생명들에게 별빛처럼 때론 해처럼 작은 촛불처럼 양심이 살아갈 수 있기를. 자라나는 어린 자녀들에게 얘기를 해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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