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희철의 '두런두런'/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

지키지 못한 약속

by 한종호 2020. 4. 19.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60)


지키지 못한 약속


아내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아름다운 삶을 사셨다. 바쁘게 농사를 지으면서도 누가 아픈 사람이 있다 하면 한달음에 달려가 기도를 해주셨고, 정신이 온전치 못한 이는 아예 집에서 함께 지내며 나을 때까지 기도를 계속해 주셨다. 그 때 회복된 분 중에 지금도 생존해 계신 분들은 두 분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소중하게 기억하고 있다. 문전옥답을 예배당 터로 바치신 것도 두 분께는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만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세워진 교회가 수원 고색동 인근에 여럿이다. 돌아보면 직분이 장로였을 뿐, 목회자 이상의 역할을 하신 것이었다. 


화성지역을 오가는 선교사들을 모시는 것도 할머니의 몫이었다. 선교사가 재래식 화장실을 힘들어하여 늘 요강을 가지고 다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할머니는 따로 이름을 기억하진 못하셨지만, 집에 묵어가던 선교사가 스크랜턴 아니었을까 모르겠다.




두 분의 믿음도 귀하지만 두 분의 삶도 귀하게 여겨진다. 밤이 늦도록 조곤조곤 이야기가 끊이질 않으셨다는데, 그렇게 부부로 함께 사신 세월이 70년이었다. 부부로 사신지가 70년이라니, 흔치 않은 은총을 누리셨다 싶다. 70년을 같이 사셨는데도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할머니는 몹시 서운하다고 하셨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부탁한 일이 있었다. 당신의 젊은 시절에 성경을 배우고 받은 수료증들이 있는데 그것을 당신과 함께 묻어달라고 하셨다. 당신의 삶을 이끌어 온 것이 말씀의 빛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할머니가 소중하게 보관해 온 수료증은 빛이 누렇게 바랜 상태다. 살펴보면 많은 것들이 새롭다. 1925년부터 1935년까지 받은 <진급증서>와 <수업증서>에는 그동안 배운 과목들이 적혀 있었다. ‘에스더’ ‘에베소’ ‘호세아’ ‘빌닙보’ ‘아모스’ ‘요1,2,3셔’ ‘미가’ ‘갈나듸아’ ‘나훔’ ‘하박국’ ‘성신’ ‘예수의 여자에게 대한 태도’ ‘예수의 재림’ ‘서반이야‘ ’학개‘ ’산상보훈‘ ’가정공과‘ 등 과목이 다양했다.




수료증을 발급한 연도는 ‘구쥬강성1925년 4월’이었고, 모임을 주관한 곳은 ‘감리교회녀교우셩경강습회’와 ‘기독교조선감리회수원지방’과 ‘미감리교회슈원디방’, 증서를 발행하는 부인셩경강습회쟝의 이름은 펜으로 쓴 ‘Lula a. Miller’였다. 이름 아래에 찍힌 붉은 색 도장 안에는 ‘L.A.M 美羅’라는 내용이 두 줄에 담겨 있다.  


밀러 선교사였는데, 그에 대한 자료는 다음과 같다. <미감리교회 여선교사 교육가. 미국 출생. 1901년 내한. 1909년 4월 상일여학교(현 매향여자중, 상업고등학교)교장으로 26년 3월 수원지방 기숙사 건축, 29년 샘골에 학교를 세워 최용신 양의 일터를 마련하였고, 31년 연회 입회와 집사목사 안수를 받았으며 38년 12월 귀국하였다.>


모두가 소중한 자료들, 장례를 모시며 가족들과 의논을 한 끝에 일부는 할머니 품에 넣어드리고 일부는 보관을 하기로 했다. 그런 연유로 지금 나는 남겨진 자료를 마주하고 있다. 할머니의 당부를 다 지켜드리지 못해 송구하지만 물려주신 신앙을 잘 이어가는 것으로 대신한다면 할머니께서도 너그럽게 받아주시겠지 싶다. 따뜻하고 속 깊으셨던 성품, 그냥 빙긋 웃으시겠다 싶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