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희철의 '두런두런'/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

개근충

by 한종호 2020. 4. 27.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67)


개근충


이사를 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것이 있다. 고등학교 3년 개근 메달이었다. 따로 보관하고 있는 줄도 몰랐는데, 어딘가에 있다가 나타났다. 아, 내가 고등학교 때 3년 개근을 했었구나 싶었다. 그 일을 따로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집은 의왕이었고 고등학교는 수원에 있었다. 마침 수원에 새로 세워진 학교가 미션스쿨이어서 일부러 시험을 보고 선택한 학교였다. 기차를 타고 수원으로 가 버스를 타고 학교로 갔다. 중학교 때부터 시작된 기차 통학, 타야 할 기차를 놓치면 지각이어서 기차역으로 내달리는 일은 드문 일이 아니었다. 지금도 밥을 빨리 먹는 데는 그 때 배인 습관과 무관하지 않다. 어느 핸가는 홍수가 났고, 차편이 끊겨 학교에 갈 수가 없는 날이 있었는데, 늦긴 했지만 그래도 학교에 빠지지는 않았다. 특별히 공부에 열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학교에 빠지는 일은 생각 밖의 일이었다. 


3년 개근상으로 받은 메달을 특별히 자랑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막상 메달을 보니 그래도 아주 무의미한 것은 아니지 싶다. 건강했으니까 가능한 일이었고, 다치거나 사고가 없었으니 가능한 일, 무엇보다도 감사한 일로 여겨진다.



얼마 전에 들은 이야기 중에 ‘개근충’이 있었다. 개근을 한 아이를 친구들이 개근충이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이백충’ ‘삼백충’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아버지의 한 달 수입이 이백만원 혹은 삼백만원인 아이를 조롱하며 부르는 말이라고 했다. ‘충’은 ‘벌레 충’(蟲)이었던 것이다. 


개근충이란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못해 어디 한 번 여행도 다녀오지 못하는, 그래서 학교나 꼬박 다닐 수밖에 없는 아이를 조롱하는 말이었다. 세상에, 성실함이 조롱받는 세상이 되다니! 공식과 지식보다도 성실과 존중의 의미를 더 열심히 배워야 할 아이들이, 오히려 성실한 친구를 조롱하고 있다니!


어디서부터 바로 잡혀야 할까. 누군가 남 탓을 하자면 탓할 것이 얼마나 많겠는가만, 그럴 것이 없는 것이 교회 또한 교회다움을 잃어버린 까닭이다. 


우리의 익숙한 고백처럼 예수가 우리의 길이라면 예수는 우리 삶의 방향이자 방식이 되어야 한다. 예수의 마음을 품고 예수처럼 살아갈 사람을 키워내야 한다. 약자에게 손을 내밀 수 있는 가슴 따뜻한 사람으로 세워야 한다. 하지만 오늘의 교회는 그 일로부터 얼마나 멀리 멀어져 있는 것인지, 그 거리가 너무나도 아뜩하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한희철의 '두런두런' >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입장 차이  (0) 2020.04.30
뒤늦은 깨달음  (0) 2020.04.29
별 하나  (0) 2020.04.26
우리에게는 답이 없습니다  (0) 2020.04.26
갈망  (0) 2020.04.23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