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88)
망각보다 무서운 기억의 편집
5.18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았다. 자식들의 비석을 쓰다듬는 어머니들의 눈에서는 여전히 뜨거운 눈물이 흐른다. 아무리 많은 세월이 지난다 해도 그 눈물이 어찌 마를까. 어찌 뜨거움이 달라질 수 있을까. 어머니 가슴속에 묻은 자식들은 아무리 세월이 지나간다 해도 여전히 꽃다운 청춘들이다.
사진/일요신문
그 시절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고 부끄럽다. 모르기도 했고, 모른 척 하기도 했다. 오히려 광주의 아픔을 헤아리게 된 것은 군 입대 후였다. 입대를 한 것이 신학공부 3학년을 마친 1981년 7월 1일, 5.18이 일어난 지 막 1년이 지날 때였다. 논산에서 훈련을 받은 뒤 자대 배치를 받은 곳이 광주 송정리 평동에 있는 포대였다.
그 해였는지 이듬해였는지, 근무하던 부대에서는 동원예비군 훈련이 있었다. 예비군들이 부대로 들어와 며칠간 훈련을 받는 것이었다. 예비군들의 대부분은 광주 인근에 사는 이들이었다. 예비군 훈련 중에는 야간보초를 예비군들과 같이 섰다. 우리보다 먼저 군 생활을 마친 선배들, 1시간의 보초 시간은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었다.
기회가 될 때마다 조심스럽게 물었던 것이 5.18이었다.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물었다. 그런데 아무도 대답하는 이가 없었다. 발설 후 생길지도 모를 일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 아니었다. 그들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그걸 어찌 말로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말로 할 수 없는 아픔을 겪었구나, 오히려 대답을 피하는 침묵이 버거운 무게와 헤아릴 길 없는 아픔으로 다가왔다.
전두환 전 대통령을 비롯하여 당시 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이들은 한결같이 다른 말을 한다. 아예 회고록에 박아 책으로 내기까지 했다. 정말로 무서운 것은 망각이 아니다. 망각보다 무서운 것은 기억의 편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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