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500)
잃어버린 신발
예쁘게 포장된 선물을 펼친 순간, 거기에는 내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가장 멋진 선물이 들어 있었다. 축구화였다. 바닥에 볼록볼록 튀어나온 고무가 박힌, 그야말로 꿈같은 축구화였다. 공을 차면 공보다 신발이 더 높게 오르곤 하던 그 시절, 축구화는 흔치 않은 것이었다.
난 그날 밤 성탄 축하행사가 벌어지는 교회로 축구화를 신고 갔다. 자랑하고 싶은 마음을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성탄절 행사를 모두 마치고 밖으로 나왔을 때 축구화는 없었다. 신발장에 조심스레 올려두었던 축구화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속상한 엄마의 야단을, 신발을 사 주어 더 속상했을 누나가 말려 겨우 면할 수 있었다. 자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만큼 신이 났던 축구화, 그러나 그건 성탄절 행사에 신고 갈 건 아니었다.
가장 기쁜 날 잃어버린 가장 기쁜 선물. 최상의 기쁨은 내 것이 아닐지 모른다는, 최고의 기쁨일수록 누릴 시간은 짧을 수 있다는 예감과, 가장 기쁜 것일수록 내 안 깊은 곳에 두어야지 자랑삼아 드러내면 그것으로 이미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키운 건 초등학교 5학년 때, 그때 잃어버린 축구화였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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