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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

어느 누가 예외일까

by 한종호 2020. 6. 6.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505)


어느 누가 예외일까


한 사람이 예배당 앞에서 성경책을 들고 서 있다. 누군가 예배당 앞에서 성경책을 들고 서 있는 것은 얼마든지 자연스러울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는 어색하다. 어색하기 그지없다. ‘어색’이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뭔가 못마땅한, 무표정한 표정 때문만은 아니다. 





그가 예배당으로 가기 위해 했던 일을 안다. 최루탄을 쏘아 사람들을 흩음으로 길을 만들어야 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더 잘 알고 있다. 숨을 쉴 수 없다는 호소에도 불구하고 한 생명이 무릎에 짓눌려 숨졌다. 죽은 이는 흑인 시민이었고, 죽인 이는 백인 경찰이었다. 


분노하여 일어선 군중들의 분노를 공감하고 풀어야 할 자리에 있는 그였다. 갈등과 아픔을 보듬고 치유해야 할 책임자였다. 하지만 그는 분노한 군중을 폭도로 여기며 맞서고 있다. 성난 군중 위로 헬기를 띄우고, 적군을 대하듯이 총을 든 군인들을 동원했다. 그런 핑계 감을 주는 약탈행위는 어떤 말로도 정당화 될 수 없을 것이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분노한 시민을 적으로 대하며 갈등과 상처 위에 기름을 끼얹는 일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는 그런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예배당을 찾아 성경책을 들고 사진을 찍었다. 무슨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런 모습을 통해 자신이 견지하고 있는 입장과 행동의 정당성을 드러내고 싶었던 것일까? 성경책이 모든 것들을 합리화 시켜 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일까? 하지만 한 손으로 치켜 든 사진 속 성경은 한없이 가벼워 보인다. 소품으로 전락한다. 


뒤에 적인 이름을 보니 그가 찾은 교회는 성 요한 교회였다. 자신이 경험한 예수의 특별한 사랑 때문이었을 것이다, 요한은 누구보다도 사랑을 강조한 제자다. 하필이면 그가 찾은 곳이 성 요한 교회였을까 싶은데, 생각해 보면 누구라도 그런 법이다. 


사랑을 강조한 사도 이름을 가진 예배당 앞에 성경책을 들고 서 있지만, 그가 누구인지가 드러난다.
예배당 앞에서 성경책을 한 손에 들고 있음으로써,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드러낸다. 


자신이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어디서 어떤 모습을 하든, 그가 누구인지는 명백하게 드러나는 법이다.
어느 누가 예외일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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