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숙의 글밭(172)
이미 내 안에 있는 좋은 벗
살아오면서 가끔씩 좋은 벗, 좋은 사람, 좋은 선생님을 만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잠시 제 곁에 머물러 있는가 싶으면, 어느덧 혼자 있게 됩니다.
제게는 늘 함께 있어 좋은 벗, 좋은 사우(師友)가 있습니다.
밤하늘에 뜬 몇 안되는 별이라도, 먼 별을 바라보는 내가 좋습니다. 밤이면 매일 변하는 밤하늘의 달이 오늘은 어디에 떴는지, 건물들 사이로 두리번거리며 찾는 그런 내 모습이 신기합니다. 아침이면 하늘 낯빛을 수시로 살피어 마음의 결을 고르는 내가 괜찮습니다.
나무 아래를 지나며, 가슴 설레어 하는 내 모습에, 혼자서 어쩔줄 몰라 하고, 여름날 저녁이면 어김없이 환하게 꽃을 피우는 박꽃을 보며, 외롭지 않다고 생각하는 내가 순합니다.
말이 되지 못한 일들로 한밤 중에 깨어서 소리없이 떨구는 혼자만의 눈물이 이제는 저만의 것이 아닌, 지금은 알 수 없지만 세상의 어느 한 구석 외딴 곳으로 흘러가기를 원하는 한 생각이 오롯이, 가슴에서 샘솟는 샘물 같습니다.
책 속에서 만난 벗들이지만, 그 어렴풋한 마음을 어둔 가슴에 별처럼 품다가 그만 취해버리는 내가 아름답습니다.
그런 내 마음을 가만히 보고 있는 나 자신이 이제는 싫지가 않습니다. '내가 내가' 하다 보니 지나치단 생각도 들지만 또한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전부는 아닙니다.
우리는 서로의 생김새와 언어가 달라도, 서로를 바라보는 눈으로, 서로를 생각함으로, 고독과 침묵의 기도 속에서 서로가 통할 수 있다는, 보이지 않지만 그 엄연한 사실이 참 좋습니다. 맑게 깨어 있고 싶은 이유가 됩니다. 기도하면서 한 사람을 품은 즈음에 그 사람으로부터 연락이 온다면 또한 기쁜 것입니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습니다. 한 사람이 어느 한 사람에게 첫눈에 반한다는 현상은, 어쩌면 상대에게 비친, 이미 내 안에 있는 나의 가장 이상적인 모습, 또는 내가 그리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상대를 통해 비추어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내 안에 없는 것을 알아볼 수 있다는 일이, 도리어 현상계에서 과연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 싶은 궁금증이 있는 것입니다. 서로를 알아본다는 안목도, 그처럼 이미 내 안에 있는 모습이 상대를 통해 비추어 드러난 모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 벗이란, 내 안에서 부르는 메아리이기에 찾아오는 벗이 반가운 것입니다. 이처럼 보이는 모든 대상은 이미 내 안에 있는 나의 또 다른 모습일 뿐입니다. 그리고 가끔은 보이지 않는 대상을 보려고 가만히 눈을 감기도 합니다.
저의 살며 나아감은, 모든 생명이 나의 또 다른 모습임을 자각하고, 여러모로 상관 있다 여기는 마음으로 살아가려는 일입니다. 여러 생명들이 나와 상관 없다 여기려는 한 생각을 일으키는 순간, 의식은 퇴보하고, 어떻게든 죄를 지을 수 있는 싹을 틔울 악의 씨앗을 심는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생각하고 이웃을 생각하는 일이 서로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 점에서 나오는 같은 마음의 결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매 순간 만나는 이들 속에서 이미 내 안 있는 모습들을 비추어 보게 됩니다. 그래서 가끔은 오늘처럼 넌지시 웃으며 할 수 있는 말은, 이미 내 안에 있는 좋은 벗, 너와 함께 있는 내가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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