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얘기마을(15)
할머니의 믿음
아프시다는 이야기를 듣고 저물녘 올라가 뵌 허석분 할머니는 자리에 누워 있다가 괴로운 표정으로 일어났다. 양 손으로 허리를 짚으신다. 허리가 아파서 잠시 저녁을 끓여먹곤 설거지를 미루신 채 일찍 누운 것이었다.
할머니는 혼자 살고 계시다. 전에도 허리가 아파 병원을 몇 차례 다녀온 적이 있는데, 병명을 기억하고 계시진 못했지만, 디스크 증세라는 판정을 받은 것 같았다. 한동안 괜찮았는데 다시 도진 것 같다고 했다. 일을 안 하시는 게 좋겠다고 말씀드리지만, 할머니는 당장 쌓인 일거리를 걱정했다.
주일 저녁예배. 재종을 치기 위해 조금 일찍 나갔는데, 허석분 할머니가 천천한 걸음으로 교회 마당에 들어서신다.
“할머니, 허리 아프시면서요.”
그런 할머니 걸음으로라면 할머니 사시는 작실로부터 한 시간은 족히 걸리셨으리라.
“그래도 하나님께 나와야 하나님이 고쳐 주시지요.”
그날 이후 할머니는 전보다도 더 꾸준히 예배에 참석하신다. 뵐 때 마다 “좀 어떠세요?” 여쭈면, “하나님 믿고 겅중겅중 뛰어 다니지요.” 하신다.
그러다가 더 도지면 어떡하나 걱정되는데, 할머니는 아예 모든 걸 하나님께 맡겼다. 그러고 보면 할머니가 젊은 전도사보다도 믿음이 더 좋으시다.
<얘기마을>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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