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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한희철의 얘기마을

때 돈

by 한종호 2020. 7. 13.

한희철의 얘기마을(24)


때 돈


언젠가 수원 집을 방문했을 때 일이다. 온 식구들이 마루에 모여앉아 봉투를 만들고 있었다. 굉장한 양이었다. 이리 저리 각을 따라 종이를 접고 풀을 붙이는데, 그 손놀림들이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 그렇게 종이봉투 하나를 만들면 받는 돈이 8원. 난 의아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살림이 종이봉투를 접을 만큼 궁색한 것도 아닌데 무슨 일일까, 짐작이 되질 않았다. 한 장에 8원 하는 걸 바라고 저 고생을 하나 싶기도 했다. 그러나 사연을 들었을 때 난 잠시나마 내가 가졌던 의구심이 몹시 부끄러웠다. 


어머니와 형수님은 그렇게 일을 함으로 작정한 헌금을 마련하고 있었던 것이고, 온 식구가 나서서 그 일을 돕고 있었던 것이었다. 8원짜리 종이봉투, 난 같이 앉아 열심히 봉투를 따라 접었다. 봉투를 접는 마음속으로 경건함이 고여 들었다.





지난해 가을부터 처가에선 목욕탕을 지어 영업을 시작했다. 얼마 전 처가에 들러 장인어른을 만났더니 단강에 놀이방을 시작하면 간식비는 당신이 대겠다고 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해 그런 줄로만 알았는데 나중에 아내 이야기를 듣곤 콧등이 시큰했다.


아직 일할 사람이 마땅치 않아 때밀이를 못 구한 상태인데, 가끔씩 때밀이를 찾는 손님이 있어 장인이 직접 때를 밀기로 했다는 것이다. 건강이 퍽 좋은 상태도 아니고 연세도 그렇고 남의 때를 미실 형편이 아니었다. 그러나 당신은 그렇게 번 돈을 모아 단강의 코흘리개 어린이들을 위해 간식비를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때 돈이라며 웃었지만, 마음은 한없이 숙연해졌다. 가족 이야기가 되어 쑥스럽긴 하지만 돈이란 그렇게 아름다울 수도 있는 것이었다. 예배시간, 헌금함을 잡는 손이 언제라도 떨려야 하는 건 그런 마음에서이리라.


 <얘기마을>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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