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숙의 글밭(209)
차 한 잔
빈 가슴으로
마른 바람이 불어오는 날 문득
차 한 잔 나누고 싶어
이런 당신을 만난다면
푸른 가슴에
작은 옹달샘 하나 품고서
때론 세상을 가득 끌어 안은 비구름처럼
눈길이 맑고 그윽한 당신을 만난다면
차 한 잔 나누고 싶어
어둔 가슴에
작은 별빛 하나 품고서
자신을 드러내기보다는 희미한 너를 빛나게 하는
목소리가 맑고 다정한 당신을 만난다면
차 한 잔 나누고 싶어
이런 당신을 만난다면
하얀 박꽃이 피는 까만 밤 서로가 아무런 말없이
찻잔 속에 앉은 달빛을 본 순간 문득 고개 들어
저 하늘에 뜬 달을 우리 함께 바라볼 수 있다면
그러나 이런 당신이
지금 내 곁에 있지 않아도 괜찮은 이유는
내가 이런 사람이 되어도 좋겠다는 노랫말처럼
어느새 고요해진 가슴에
작은 옹달샘 하나 때론 별빛 하나 품고서
홀로 차를 마시는 내 모습 있는 그대로
아름다운 한 편의 詩가 되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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