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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숙의 글밭/하루에 한 걸음 한 마음

by 한종호 2020. 8. 17.

신동숙의 글밭(213)



광목으로 만든 천가방, 일명 에코백 안에는 푸른 사과 한 알, 책 한 권, 공책 한 권과 연필 한 자루, 잉크펜 한 자루, 주황색연필 한 자루, 쪼개진 지우개 한 조각이 든 검정색 작은 가죽 필통과 칡차를 우린 물병 하나가 있습니다.


쉼없이 돌아가는 일상에 살짝 조여진 마음의 결을 고르는 일이란, 자연의 리듬을 따라서 자연을 닮은 본래의 마음으로 거슬러 조율을 하기 위하여, 여러 날 고대하던 숲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가장 먼저 숨을 봅니다. 호흡은 평소보다 조금은 느리고 긴 호흡입니다. 호흡이 느리면 자연히 발걸음도 느릿느릿 열심을 내지도 않고 목적도 없는 그야말로 느슨한 걸음입니다. 그 느슨함이 여유와 비움으로 이어지면서 숲의 들숨은 저절로 깊어집니다.


가다가 서고 머뭇머뭇 둘러보고 쪼그리고 앉아서 자세히 보고, 잠시 머물다가 눈길 닿는 데로 또 그렇게 한 걸음을 내딛습니다. 평소에 집 앞 너른 하늘과 잘 닦인 강변 길과 도로변 좁은 풀숲에 그럭저럭 만족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매번 되살아오르려는 성급함과 거칠어진 마음의 결을 숲에선 조금 더 섬세히 고를 수 있을 것 같은 믿음 때문입니다.



자연은 언제나 실망을 준 적이 없으니까요. 보도블럭 틈새에 핀 풀꽃만 보아도 그 생명력과 아름다움에 감화가 되고도 충분한 것입니다. 더구나 숲이라면 숲이라는 이름만으로도 더 없이 충만하고도 아름다움으로 넘쳐나는 장소가 숲속인 것입니다. 


게다가 저에겐 랄프 왈도 에머슨과 핸리 데이비드 소로우와 법정스님이라는 글숲에서 만난 동행자가 있으니까요. 그리고 영혼의 호흡이 되는 예수. 


조금은 꼬이고 조여 버린 마음의 결을 어디에다 대고 비추어 펼쳐 놓고 고를까 하고 주위를 찬찬히 둘러봅니다.


보드라운 풀과 잎보다는 돌같은 나무 둥치가 더 가까이 마음으로 다가오는 이유를 미쳐 헤아리기도 전에 발걸음은 자연이 선사하는 아름다움에 이미 한 발짝 더 다가가고 있는 것입니다. 오솔길에 들어서기도 전에 가장 먼저 반기는 매미소리.


숲 속 매미 소리는 

도시의 매미 소리와는 사뭇 다른 소리

결이 고운 소리


나뭇잎 사이로 지나 온 햇살에 

곱게 다듬어진 소리

숲을 지나온 내 마음의 결도 가지런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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