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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숙의 글밭/하루에 한 걸음 한 마음

텅빈 대형 교회당과 거룩한 성전

by 한종호 2020. 8. 21.

신동숙의 글밭(217)


텅빈 대형 교회당과 거룩한 성전


인도 여행을 하면서 들었던 이야기 한 자락이 생각난다. 코끼리 형벌에 대한 이야기다. 죄를 지은 신하에게 왕이 내리는 형벌 중에서 코끼리를 하사하는 형벌이 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땐 그게 무슨 형벌이 될까 싶었다. 언뜻 생각하면 형벌이 아닌 코끼리 선물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토끼도 아닌 거대한 코끼리를 왕이 내려준다니 형벌보다는 오히려 선물이 아닌가. 


하지만 거기에는 조건이 있었다. 코끼리를 굶어 죽게 해선 안되는 것이다. 코끼리를 팔아서도 안되는 것이다. 왕이 하사한 코끼리를 잘 먹여서 키워야 하는 형벌인 것이다. 코끼리 한 마리가 먹는 채소와 과일의 양은 하루에 100kg이 된다고 한다. 코끼리 한 마리를 먹여 살리다가 점점 집안의 재산을 탕진하고 만다는 것이 코끼리 형벌이 지닌 뜻이었다. 죄인의 집안 전체를 서서히 허물어뜨리는 형벌인 것이다.


광장에 모여 '헌금'을 외쳐대던 대형 교회 목회자들의 심정이 코끼리 형벌을 받은 죄인의 심정일까? 아니면 기도로 회개하던 고래 뱃속 요나의 심정일까? 욕심껏 배를 부풀린 대형 교회당이 세상을 등진 후 점점 그 커다란 배를 채우지 못하고 서서히 텅빈 교회당이 되어 가는 모습을 본다. 



그 옛날 탐욕으로 쌓아올린 예루살렘 성전을 보며, 돌 위에 돌 하나 남기지 않고 무너지리라 했던 예수의 기라성이 들려오는 듯하다. 세상 사람들과 믿음의 사람들로부터 이미 신뢰가 돌 위에 돌 하나 남기지 않고 처참하게 무너진 한국의 대형 교회가 아니던가. 반면에 예수의 말씀은 한 점 일 획도 사라지지 않고 길이요, 생명이 되어 가슴에 살아서 숨쉬고 있다.


그리고 예수는 허물어진 성전을 사흘만에 다시 일으키시리라 예언하셨다. 예수가 말하는 거룩한 성전은 예수의 몸, 즉 하늘의 뜻이 임재하는 사람의 몸이 거룩한 성전인 것이다. 연일 들려오는 세상 소식들로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 요즘이다. 이럴 때일수록 더욱 안으로 깊이 하늘을 우러러보려고 한다. 


하늘에는 어떠한 어지러움도 혼란도 없이 하나로 커다랗고 푸르고 맑고 고요하기만 하다. 탐욕의 구름을 걷어낸 너머에 있는 하늘은 여전한 것이다. 


맑고 푸르고 고요한 하늘은 우리 모두에게 보편적으로 이미 있는 내면의 하늘을 가리킨다. 광장이 아닌 골방에서 드리는 고독한 기도, 큰 소리로 떠드는 기도가 아닌 고요한 침묵의 기도, 하늘의 뜻에 고요히 귀를 기울이는 초연함의 기도, 날숨마다 일어나는 욕심을 내려놓으며 스스로 쌓아올린 욕심의 성전을 돌 위에 돌 하나 남기지 않고 허물려는 비움의 기도, 그렇게 나를 비움으로 비로소 드러나는 푸르고 텅빈 하늘이다. 


풍진 세상으로부터 믿음의 백성들을 구원해 줄 노아의 방주를 짓는 심정으로 쌓아올렸다는 대형 교회당은, 처음부터 구석구석 아무리 찾아 보아도 예수의 몸된 성전과 하늘의 뜻이라고는, 돌 하나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그 옛날 예루살렘 성전처럼 돌 위에 돌 하나 남기지 않고 이미 처참하게 허물어진 신뢰. 


예수가 허물고 사흘만에 다시 일으키리라 예언했던 예수의 거룩한 몸이 성전인 것이다. 하늘의 뜻이 임재하는 거룩한 몸이 성전인 것이다. 탐진치에 물든 자기 자신을 비우려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몸이 거룩한 성전, 하늘의 뜻이 임재하는 임재하기를 원하시는 성전인 것이다. 예수가 하신 말씀을 나는 이렇게 들었다. 


마음으로 죄를 지어도 이미 죄가 된다 하시던 예수가 끊임없이 가리키던 좁은문, 하느님이 무릇 지킬만한 것 중에 더욱 지키라 하신 마음, 부활하신 예수가 하늘로 오르시며 우리에게 주신 진리의 성령은 양심인 것이다. 하늘의 뜻이 임재할 거룩한 성전은 누구에게나 보편적이고 공평하게 이미 있는 마음, 양심인 것이다.


골방에서 드리던 다니엘의 기도처럼, 이 세상에 머리 둘 곳 없다 하시던 예수의 탄식처럼, 홀로 산으로 오르시던 예수의 고독처럼, 골방에서 고독과 침묵의 기도 속에 고요히 머물러 하늘의 뜻이 임재하는 거룩한 성전이 오늘도 나의 몸된 성전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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