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용의 종교로 읽는 한국 사회(11)
‘집단주의’라는 광기
- 종교를 보는 다르나 같은 눈 -
한 참 전의 일이다. 그때 우리는 98년 월드컵 아시아 예선을 지켜보고 있었다. 예선이 있기 전 96년 아시안컵에서 한국의 국가대표팀은 이란에게 2:6라는 치욕스런 패배를 당했다. 그때 국가대표팀을 이끌던 이는 84년 청소년 세계 대회 4강의 위업으로 이름 높은 박종환 감독이었다. 아시안컵이 끝난 뒤 박 감독은 사임했고, 그의 뒤를 이어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전설적인 성공 신화를 만들고 돌아온 차범근 씨가 새로운 사령관이 되었다. 그때 그의 나이는 40대 중반쯤 되었다. 국가대표팀 감독으로서는 약간 이른 감도 있었지만, 위기에 빠진 한국 축구계를 구할 적임자로서 많은 이들은 차 감독을 꼽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결국 그는 절체절명에 처한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직을 수락했고 곧바로 험난한 월드컵 예선리그에 뛰어들었다. 다행히 결과는 ‘축구 영웅 차범근’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큰 성공을 거두었다. 매 경기마다 그와 선수들은 승리의 소식을 전해주었으며 예선 최종경기를 치르기도 전에 이미 월드컵 본선 행을 확정해 놓았다. 당시 국민들은 누구랄 것도 없이 너도 나도 그에게 ‘축구 대통령’이라는 칭호까지 부여하며 끝없는 환호와 응원을 보냈었다.
그때 어디 한 구석에선가 승승장구하던 차 감독에 대한 퉁명스런 불만의 목소리가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불평의 중심에는 차 감독의 종교가 자리하고 있었다. 다른 것은 다 그렇다 치더라도 차 감독의 모습에서는 너무 종교적인 모양새가 강하게 드러난다는 지적이 여기저기에서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왜 차 감독은 벤치에 앉아서 선수들을 독려하는 모습보다 기도하는 자세를 더 자주 보여주느냐, 경기에 대한 멘트에 하나님에 대한 언급은 왜 약방의 감초처럼 빠지는 적이 없느냐. 소소하긴 하지만 이런저런 차 감독이 보여주는 특정 종교에 편향적인 태도에 못내 불편함과 못마땅해 하는 이들의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삐져나오기 시작하였다.
그때 맨 앞에서 총대를 멘 것은 김용옥 선생이었다. 그는 1997년 가을 <중앙일보>에 실린 기고문을 통해 차 감독의 지속적이고도 공개적인 종교적 행실에 문제 있음을 적시하고 나왔다. 그러면서, 예의 기독교 비판가들이 늘 그렇듯이, 성서의 한 구절을 친절히 인용하며 ‘기도는 골방에서 할 것’임을 훈계하며 지금 대중 앞에 보이는 차 감독의 모습은 그 옛날 예수가 질타해 마지않던 바리사이파의 그것과 매우 유사하다는 훈계를 일갈하고 있었다. 약간의 침묵이 있은 후 이에 대한 차 감독의 반론 역시 공개되었다. 그는 축구 감독이라는 직업이 주는 과도한 스트레스에 대해서 설명함으로써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었다. 막중한 스트레스에 노출된 축구 감독들은 상당한 정도의 심적 부담을 가지게 되는데 심한 경우 약물에 까지 손을 대는 이들도 있다고 하며(실제로 유럽에는 그런 감독이 있긴 하다), 그에 비해 신앙으로 그 모든 압박감을 이겨내고 있는 자신은 오히려 대견하고 또한 칭찬받아야 하지 않느냐는 투의 반론을 편 것으로 나는 기억하고 있다.
한국 사회의 개신교에 대한 지속적인 ‘한’ 시각
한 때의 해프닝으로 지나가긴 했지만 한국사회의 대중이 보고 있는 개신교도들에 대한 ‘한’ 시각을 분명하게 살펴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리곤 세월이 많이 흘렀다. 하지만 한국 개신교도들에 대한 한국사회의 그 ‘한’ 시각은 여전히 살아있으며 오히려 이런 저런 사고, 사건들로 인해 그 ‘한’ 시각은 지금은 한국 개신교도들의 신앙 행태를 규정짓는 하나의 ‘잣대’가 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그 후 그러한 와중에 또 커다란 사건이 터졌다. 그때, 그 사건의 파장은 사회적 의미와 규모 면에서 한 개인의 신앙 행태에만 제한되었던 이전 차 감독의 경우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넓고 컸다. ‘이랜드 비정규직 탄압’과 ‘탈레반 피랍사건’ 등으로 대표되는 최근 몇 년 동안 한국 개신교와 관련되어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에 대한 사회적 반응들은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개신교에 대한 규범적 시각이 어떠한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종교의 이름으로 자신들의 배를 살찌우는 자들’
‘공격적 선교로 무장하여 타 문화에 대한 존경과 배려도
완전 상실한 개념 없는 이들’
일반인들이 쏟아놓는 한국 개신교에 대한 저주에 가까운 불평, 불만, 혹은 소감들은 역사상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부흥과 성장의 나라라는 아늑한 꿈속에 빠져있던 개신교도들에게는 상상을 뛰어넘는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 마다 댓글로 주렁주렁 열매처럼 달려있던 개신교회에 대한 저주의 발언들은 수많은 개신교도들들 낙담케 했을 것이며, 아울러 전체적인 개신교 위기상황을 인식하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이와 같은 연속된 문제들이 한국 개신교회들 중 보수임을 자임하는 계열과 그룹에서 터져 나왔다는 사실이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연속된 한국 개신교가 핵심을 이루는 사건에 대한 저주의 시리즈에는 같은 개신교의 다른 쪽 이들도 많이 가세하기도 했다. 물론 건전한 내부 비판은 언제나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은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기서 내가 지적하고 있는 것은 그런 소위 진보계열의 건강하고 유의미한, 그리고 지속적이기도 했던 애정 어린 비판이 아니라, 개신교에 대한 사회적 비난에 편승한 저주의 욕설덩어리로 똘똘 뭉친 비호감 가득한 반종교적 비난들로 한정한다.
이러한 욕설의 행진에는 적잖은 조직 세력의 움직임도 읽혀진다. 그리도 의도적인 왜곡 보도와 사실 관계 확인도 없이 무차별적으로 배포되는 프로파간다 역시 읽혀진다. 하지만 이런 몇몇 조직적인 안티 개신교 움직임 때문에 작금 한국 개신교의 동네북 신세에는 정치적인 모략이 있다고만 소리 지를 수만도 없다. 왜냐하면 몇몇 의도적 왜곡 세력들이 있다손 치더라도, 현 한국 사회에서 가해지는 개신교회에 대한 비판의 내용에는 분명히 귀담아 들어야 할 것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혹시 문제는 다른 곳에 있지는 않나?
집단주의라는 오래된 망령
그렇다면 이제 문제는 어떻게 하면 동네북 신세가 된 한국의 개신교를 구해볼 수 있을까 인가? 과연 개신교회의 무엇 때문에 사람들이 저토록 분노하는지 그 대상과 내용을 차분히 분석해 보는 것일까? 여기서 나는 잠깐 동안 어지러움을 느낀다. 도대체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 것인가? 개신교도들의 공격적이고도 전투적인 선교방식, 그리고 그들의 배타적이고도 자문화 우월적인 엘리트적 선교방식, 그리고 그로 인해 파생되는 해당 지역과 민족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무시와 폄하 기타 등등. 그런데 이 문제들을 어찌 풀어야 하나? 결국 이 문제에 대한 해답 찾기는 기존 교과서의 매뉴얼을 반복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까? 그리고 그 원론적인 문제를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것이 과연 작금 한국 사회와 개신교가 직면하고 있는 ‘소통의 고통’을 덜어주는데 어떤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일까? 이 정도 생각에 이르게 되자, 나는 이 문제를 다시 한 번 바라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자 이전과는 달리 이 문제가 가지는 또 다른 구조가 눈에 들어왔다.
차근히 따져보자. 종교란 문화 현상의 속성을! 우리가 어떻게 규정하든 간에 종교는 지극히 주관적이고 실존적이며, 또 개인적이다. 고대와는 달리 현대사회 속에서 종교는 개인의 선택문제가 되었고, 그 선택이 타인에게 부정적이고 위해적인 영향을 강요하지 않는 한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우리가 사는 현대 사회에서는 특정 종교를 선택했다고 해서 특별히 비난받을 이유가 객관적으로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작금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특정 종교에 대한 집단적 왕따 분위기의 정체는 도대체 어찌 해석해야 하는가? 난 이 사회적 행위 속에서 또 다른 집단주의의 망령을 본다. 그리고 그 집단주의의 망령은 욕하는 이나, 욕먹는 이에게 모두 해당하는 매우 오래된 것이다.
다시 문제를 정리해보자. 작금 한국의 개신교도들은 지나칠 정도로 대중에게 욕을 먹고 있다. 그리고 욕하는 대중들은 그것이 지엽적인 문제이고 개신교도들 일부에 해당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지나칠 정도로 일반화시키며 사회적 이슈화에 무척 열심이다. 아울러 그에 응당 따라와야 할 사회적 반성의식은 큰 관심의 대상도 아니다. 이 점에서는 소위 잘나간다는 논객들이나 일반 시민들 모두 다를 바가 없다. 북은 때리라고 있는 것, 그저 때리고 볼 일인가?
헌데 나는 그 때림의 행위 저편에 똬리를 틀고 있는 아주 오래된 망령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집단주의’라는 모습으로 포장되어 있다. 개인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 외의 다른 색은 결코 있을 수 없다는 우리 사회의 저 오래된 강력한 종교적 이념은 오늘도 어김없이 다른 색이고자 하는, 혹은 다른 색일 가능성을 주장하는 이들을 찾아 우는 사자처럼 으르렁거리고 있다. 그리고 그 대상은 꼭 개신교도들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우리는 한국사회의 격변 속에 얼마나 이 집단주의적 최면이 수많은 대상을 바꿔치기 했는지를 잘 알고 있다. 혹자는 이 집단의식을 민족주의라 말한다. 때로 이것을 국수주의라 평하는 이들도 있다. 여하튼 간에 한반도를 장악하고 있는 이 망령 덩어리는 ‘부정적 집단주의’로 해석하기에 충분히 가능할 정도이다. 그리고 이 망령은 자신과는 다른, 혹은 다르고자 하는 다양한 세력들에게 거침없는 돌팔매질을 여전히 반복하고 있다.
이 엄청난 규모의 거대한 집단 에너지가 금세기 한반도에 공개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2002년 한일 월드컵부터이다. 당시 시청 앞 광장을 가득 메운 수십만의 인파들은 흡사 집단주의 정당의 공개선포식에 모인 당원들과도 같았다. 물론 그것은 즐거운 축제였다. 그리고 그 축제를 누리기에 충분한 여건이 안팎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 사건으로 인해 우리 사회에 들어온 ‘집단의 힘은 꽤 크고, 또한 기대했던 것보다 많은 것을 할 수 있다’라는 자긍심은 향후 벌어지는 한국 사회가 보여주는 집단적 왜곡현상의 시작이라고 해석해도 지나치지는 않을 것이다.
여러 면에서 프로파간다에 의한 집단의 결집과 그 다수의 위력을 실감한 한국 사회는 지속적으로 이 집단의 마력에 빠져들어 갔다. 그 후 이어지는 효순, 미선양 사건에 대한 국민적 결집, 그리고 그 해 말 있었던 대통령선거에서 나타났던 네티즌들의 온라인 대동단결. 그 후 한반도를 다시 뜨겁게 달궜던 배아줄기세포 파동, 그리고 심형래 감독의 <디-워> 논쟁에 이르기까지. 매우 굵직한 한국 사회 사건들 속에는 어떤 식으로는 이 집단주의가 발동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이 집단주의는 굶주려 있던 한국의 자긍심을 먹고 <고스트 버스터>의 ‘찐빵 괴물’처럼 자라고 또 자랐다.
‘과학에는 국경은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조국이 있다’, ‘미국의 심장에 태극기를 꽂고 왔다’라는 등 전혀 과학적이지 않는 한 유명 과학도의 발언에 얼마나 우리 사회가 열광했던가! 그리고 그 광기서린 에너지가 진실을 찾고자 했던 한 방송사를 고사 직전까지 몰고 가는 장면을 우리는 선연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뿐이던가. ‘좋다, 혹은 나쁘다’라는 지극히 정서적인 기호로 표해야 할 영화의 감상을 ‘자랑스럽다’, ‘한국인인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라는 등 영 격에 맞지 않는 이념적 코드로 화장을 해도 전혀 이상타 느끼지 않는 우리 사회의 평균심, 그리고 그들의 위대한 자긍심에 상처를 낼 수 있는, 아니 실제로 내고 있는 평론가들의 정당한 평가에 매우 구체적인 인신모독과 협박으로 대응하고 있는 한국식 여론형성의 현실!
영화 <디-워>를 혹평했다 하여 얼마나 많은 이 땅의 평론가들이 곤욕을 치러야만 했던가! 이 광연한 21세기의 자유세계 국가에서 우리는 얼마나 어두운 아젠다 형성의 질곡을 경험하고 있어야만 하는가! 이들의 왜곡된 민족적 자긍심은 정당한 비판을 넘어 보장받아야 할 개개인의 정보와 가족관계까지 만천하에 까발리는 대담한 범죄행위도 애국행위의 하나로 해석하게 만들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공개된 개인의 소중하고도 인격적인 정보들을 공유하며 히히 낙낙하며 네버엔딩스토리에 가까운 영웅담 만들기를 하고 있는 우리들의 심사는 도대체 어디에 기원하고 있는 것인가?
이길용/종교학, 서울신학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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