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용의 종교로 읽는 한국사회(13)
한국 신학계의 원효는 가능할까?
이 땅에 그리스도교가 발을 들인지 개신교는 130년, 가톨릭은 그보다 백여 년이 앞선 230년이 되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세계적으로 알려진 신학이나 학자가 한국의 그리스도교계에서 나왔다는 소식은 좀체 들려오지 않는다. 물론 그나마 서남동(1918~1984), 안병무(1922~1996) 등으로 대표되는 민중신학이 한국적 신학의 한 모습으로 서구에 많이 소개는 되어있다. 하지만 서구신학자들의 냉철한 평가는 민중신학 역시 남미에서 태동한 해방신학의 한 지류 정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민중신학자의 글과 언어 속에 그들로서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비약논리를 찾아낼 때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기 까지 한다. 물론 서구인들이야 그런 인식이성의 만능주의 속에 살고 있기에 자신들 논리 구조 속에 이해되지 않는 것에 대한 그 정도의 반응은 어쩔 수 없다 하겠다.
한동안 몇몇 신학자들이 토착화 문제를 들고 나오긴 했다. 하지만 결국 토착화의 대상에 대한 이해 부족 때문에 이 작업은 깊이 있는 수준으로는 이어지지 못했고, 매번 수필 혹은 시론적 구상에만 멈추곤 했다. 그리고 보수 계열 쪽의 신학 역시 이런 사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각자의 교리를 강변하는 선언적 주장은 있어도 신학적 보편성으로 세계가 인정하는 논리를 펴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던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한국에 들어온 종교 가운데 백여 년이 넘어가면서도 굵직한 사상가나 학자를 배출하지 못한 것은 그리스도계열이 처음이라는 점이다.
<원효대사 - Wikimedia Commons>
불교는 신라 땅에 들어온 지 백여 년 만에 원효(元曉, 617~686)라는 걸출한 학승을 배출했다. 원효는
그가 살았던 시대로부터 천 년이 훨씬 넘어가는 지금까지도 사상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거인중의 거인이다. 게다가 원효 이전에도 이미 삼론종의 승랑(僧朗, 4세기 중후반에서 5세기까지 활동했던 고구려의 승려로 중국의 삼론종학을 확립시킨 인물)이나, 의상(義湘, 625~702), 지눌(知訥, 1158~1210) 등 현장과 학문에서 굵직한 족적을 남긴 많은 불교인이 있다.
유교만 해도 초창기 설총(薛聰, 655출생 사망연도 미상, 신라 중기의 학자)을 위시해서 김부식(金富軾, 1075~1151), 정도전(鄭道傳, 1342~1398), 김종직(金宗直, 1431~1492), 이황(李滉, 1501~1570), 이이(李珥, 1536~1584), 최한기(崔漢綺, 1803~1877) 등 걸출한 사상가를 올릴 수 있다.
또한 19세기에는 최제우(崔濟愚, 1824~1864, 동학의 창시자), 최시형(崔時亨, 1827~1898, 동학의 2대 지도자), 강일순(姜一淳, 1871~1909, 증산교의 창시자), 박중빈(朴重彬, 1891~1943, 원불교의 창시자) 등 세계 종교사에 기록될 만한 신종교의 지도자들이 등장했다.
하지만 유독 그리스도교에서는 그만한 걸출한 사상가들을 여태껏 찾아보기 어렵다. 그나마 유영모(柳永模, 1890~1981) 선생 정도를 꼽아볼 수 있겠으나, 솔직히 선생의 그리스도교에 대한 이해는 그리 정밀한 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유영모의 기독교적 사고의 틀을 말하자면, 기존 유학적 지식에 성서 세계관이 격의 되어 습합된 상태를 이루고 있는 모양새라 할 수 있다. 그나마 유영모 선생 외에는 달리 내세울 사상가가 없을 정도로 한국의 그리스도교는 사상-학문적으로는 궁핍한 상태라고 할 수 있겠다. 그 점에서 유영모 선생이 제대로 신학교육을 받았으면 어떠했을까라는 아쉬움도 있긴 하다. 하지만 역으로 선생이 정식 신학교육을 받았다면 전혀 선생답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유영모 선생 외에 한 사람을 더 꼽아보자면, 선생의 제자이며 동료이기도 했던 함석헌(1901~1989) 선생 정도를 거론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유독 그리스도계에서 출중한 사상가나 신학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무얼까? 많은 진단이 가능하겠지만 우선 지목할 수 있는 것이 한국의 신학교육이 교단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데서 한 원인을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한국에서 신학적 논의를 이끌고 갈만한 학교가 별로 없다. 대부분 신학대학들이 목회자 양성이라는 목표에 더 많이 집중하고 있는 탓이다. 개중에 혹자는 한국의 교단과 신학대학들의 신학적 노선을 도표까지 만들어 진보, 자유, 보수 등등으로 구분하기도 하지만, 사실 대부분 거기서 거기라고 볼 수 있다. 물론 그러한 구분은 이념적이거나 정치적 영역으로 본다면 틀리지는 않지만, 신학적 포지션으로 보자면 몇몇 경우 빼놓고는 큰 편차를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사실 구호와 명찰만 가지고 신학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나마 신학을 학문적으로 발전시켜야 할 책무와 위치를 지녔다고 여길만한 일반 종합대의 신학관련 학과들도 생존을 위해 교단도 없이 목사 라이선스를 제공하는 처지이지 않는가. 연대, 이대, 숭실대, 계명대, 호서대, 경성대 등등 대략 십여 개 정도의 종합대학 내 신학관련 학과들이 연합체를 꾸려 졸업생들에게 목사 안수를 주고 있는 것이 지금의 상황이다.
교단 신학대학들은 졸업한 전도사들이 현장에 당장 투입하기에는 문제가 많다는 개 교회 담임목사들의 불평 덕(?)에 부랴부랴 서둘러 많은 교과과정을 실용적 내용으로 채우기 시작한지 이미 오래이다. 그리고 이런 분위기 속에 진중한 신학적 사변에 열중하기 보다는 당장 교회에서 써먹을 만한 몇몇 분야의 과목들이 집중적으로 선택받게 된다.
게다가 교단 중심으로 신학대학들이 운영되다 보니 열띤 학문적 논의나 토론을 기대하기 또한 어렵다. 국내 어느 신학대학이든 대부분 그 교단, 그 학교 출신으로 채워지기 마련이다. 그러니 같은 교수라도 학번 순대로 줄서기를 할 수밖에 없고, 거기서 오는 내집단의 폐쇄주의가 신학이라는 학문의 발전을 더디게 만든다. 그리고 이런 진영주의적 폐쇄주의가 워낙 곤고하다보니 학교를 넘어서는 학문적 논의나 담론 대결도 기대하기 어렵다. 그냥 자신들의 영업 공간에서 자신들의 분깃만 지키면 될 뿐이다. 일반대학에서도 보기 어려운 출신 순혈주의가 더 치열한 곳이 바로 한국의 신학대학이다.
거기에 학생들은 깊은 사색과 고민, 그리고 학습이 필요한 이론분야나 고전어를 통달해야 하는 성서신학 관련 분야들은 점점 회피하려 한다. 어렵고, 힘들고, 곤란한 전공에 거리를 두겠다는 분명한 의도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그나마 신학적 사유의 모범을 보여줘야 할 교수들은 대형 교회 눈치 보느라 내야 할 소리를 스스로 필터링하고 있고 있는 것이 또 뼈아프다.
이런 형국에 제대로 된 신학자를 기대한다는 것이 어불성설일 수 있을 것이다. 참으로 힘겨운 상황이다. 그렇다고 그리스도교가 국교도 아닌 한국에서 일반 종합대학에 신학과를 설치하라고 강요할 수도 없는 일이고, 그나마 얼마 남지 않는 기독교 대학의 신학관련 학과들은 존폐위기에 처해있는 상황이니 말해 무엇 하겠는가.
이런 점에서 한국의 교단들이 연합으로 양질의 신학자들을 양성할 수 있는 연합대학원 하나 기획하는 것은 어떨까 싶다. 물론 이 역시 각 교단과 학교별 집요한 권력과 이익에의 의지 때문에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1,400여 년 전 원효가 쓴 <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疏, 원효가 쓴 대승기신론에 대한 주석서이고 2권 1책으로 이뤄져 있음)는 그때나 지금이나 전 세계 불교인들이 즐겨읽는 명저로 자리 잡고 있는데, 과연 한국 그리스도교의 원효는 언제쯤 볼 수 있을지….
이길용/종교학, 서울신학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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