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용의 종교로 읽는 한국사회(12)
종교를 보는 다르나 같은 눈
지극히 개인적인 종교,
그리고 그를 보는 지극히 집단적인 시선들
이제 이 서슬 퍼런 ‘이념의 뭉치’는 개신교에 대한 비판에도 고스란히 이용되고 있다. 각 사람은 자신의 행위가 가져온 사회적 결과에 책임을 진다. 그리고 그 책임의 여부와 범위는 사회가 정한 법률과 관습에 따라 결정되면 그뿐이다. 따라서 구체적인 개인이 각 행위 결과에 대한 책임을 법률에 따라 지면 되는 것이다. 어느 종교 어느 단체이든 언제나 그렇듯이 왜곡된 일탈 현상은 있기 마련이다. 문제는 생기게 되어있고, 그리고 거기에는 구조적이고 또 개인적 성향의 이유가 있을 수 있다. 따라서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미 일어난 문제의 요인을 명쾌히 분석하고 또 비난의 방향을 제대로 맞추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속한 사회에서는 재미있는 현상이 생겨난다. 문제가 일어난 요인에 대한 분석보다는 비판, 아니 비난하고자 하는 대상의 타격에만 온 신경을 집중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비난성 타격에는 딱히 세세한 설명이나 분석도 필요 없다. 그냥 타격하기에 유리한 프로파간다만이 요청될 뿐이다. 그런데 이때 요청되는 구호가 보여주는 타격하는 이의 심리상태는 이것이 집단주의의 한 변형임을 금시 눈치 채게 만든다. 바로 여기서 개신교를 포함한 한국 사회 종교에 대한 아젠다 형성의 미숙함과 또 폭력성을 읽을 수 있게 된다.
온라인 커뮤니티나 일반 생활세계에서 만나는 개신교에 대한 반감을 지닌 이들이 내어 뱉는 흔한 구호가 ‘동방의 나라에 웬 서양귀신!’이다. 이는 바로 예의 집단주의적 파워를 반복해서 보여주던 ‘한국적 민족주의’에 기댄 발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들이 이런 유의 발언을 자주 사용하는 것은 그만큼 한국 사회에는 이와 비슷한 발언들이 집단적 반응을 쉽게 불러온다는 생생한 체험에서 얻은 요령 때문일 게다. 그런데 이것만큼 종교의 세계를 오인한 발언도 없을 것이다. 이미 말했던 바, 지금 우리에게 종교란 개인의 선택문제이다. 거기에 국적을 따질 이유도 또 필요도 없다.
사실 종교와 사회가 떨어질 수 없었던 때가 있었다. 근세 이전의 세계는 대부분 그러했다. 물론 그리스도교나 불교처럼 개인의 선택과 수행에 의한 구원과 해탈을 강조하는 실존적 성격이 짙은 종교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이들 종교 역시 근세이전에는 정부 조직과 밀접히 연결되어 국가 종교화된 역사적 실제가 분명히 있었다. 고대는 말할 것도 없다. 게다가 고대인들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식의 종교는 체험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그리스도교, 불교, 이슬람, 유교, 도교, 힌두교 등등 주변의 다양한 종교들을 각각 객관적 조직체로 인식하고, 각기 폐쇄된 조직체들 중 하나를 선택한다는 식의 종교에 대한 시각은 고대인들에게는 없었을 것이다. 그들은 한 부족, 도시, 그리고 한 나라에 태어나면 자동적으로 해당하는 부족, 도시, 그리고 국가의 종교에 속할 뿐이다.
그들 종교생활에 선택은 없다. 그저 자신이 속한 전통 하에 태어나고 살아가고, 또 죽어갈 뿐이다. 종교는 가족의 계보를 따라 이어갈 뿐이고, 또 부족과 민족, 그리고 국가 단위로 존속될 뿐이다. 어떤 경우건 내 실존이 ‘나의 필요’에 의해 ‘특정한 종교’를 ‘선택’하는 경우는 있을 수가 없다. 바빌로니아에 태어났으면 당연히 바빌론의 수호신 마르둑을 섬겨야 했고, 팔레스타인 평야의 튼실한 아들로 태어났으면 바알의 숭배자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 외에 새롭게 종교를 바꾸는 경우는 정치적 환경이 변할 경우이다. 제국의 시대에 힘센 나라에 자신의 국가가 흡수 되었을 경우 그는 어쩔 수 없이 노예의 신분으로 주인의 종교를 따라야 했다.
하지만 이런 종교 생활에 적잖은 변화가 생겨나게 된 것은 이스라엘의 종교가 역사에 모습을 드러낸 이후이다. 종교 비판적 사고를 통해 참신숭배 사상을 형성한 히브리인들은 그들 이외의 집단에서 섬기는 신들을 우상으로 간주하게 되었고, 게다가 그들은 정치적 변동 하에서도 그들만의 종교세계를 유지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그것도 그들의 자의적 선택은 아니었다. 유대인으로 태어났기에 그들은 유대의 종교를 따를 뿐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교육받고 성장했기에 그들은 별다른 실존적 고민 없이 자신들의 종교를 따른 것이었다. 비록 지배를 당하는 쪽이 되었어도 그들 종교가 지닌 오래된 집단주의적 성향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다. 중세의 그리스도교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스도교적 정신과 문화가 보편국가를 형성하고 있던 중세에 특별히 사람들은 종교를 선택할 필요가 없었다. 이미 그들 사회에는 체계화된 종교가 있었고, 그들은 자연스레 자신들의 생활세계와 하나로 통합되어 있는 ‘하나의 종교’를 받아들이면 될 뿐이었다. ‘선택’이 끼어 들 자리가 그렇게 많지 않았던 것이다.
종교개혁, 개인주의적 종교의 시작
본격적인 변화의 조짐은 르네상스 이후 종교개혁에 이르러 생겨나기 시작했다. 르네상스의 뛰어난 자연과학자들과 인문주의자들에 의해 서서히 인류는 새로운 세계관을 세워나가기 시작했다. 우선 지구 중심적인 사고가 다양한 발견과 주장들에 의해 서서히 해체되어 갔다. 우주의 중심을 지구로 보던 관점의 해체는 전혀 새로운 세계관을 당대인들에게 제공하였다. 이제 더 이상 우주는 신을 정점으로 하여 다양한 등급의 존재들로 구성된 위계적인 세계가 아니다. 눈에 보이는 유일한 중심은 이제 사라졌다! 해는 뜨고 지지만, 이제 근세 인류의 계산속에 그런 해는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거대한 자석체인 천체들은 서로 끌어당기는 힘에 의해 적절한 지점에서 균형을 이루게 되고, 이때 형성된 힘의 균형은 그들을 스스로 회전하게 만들며, 아울러 강력한 구심이 되는 항성의 주변을 타원형으로 돌게 한다는 사실을 그들은 이제 수학-물리적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이렇게 르네상스 이후의 인류는 그동안 우주의 중심으로 강력히 기능하던 지구라는 덩어리가 사라지는 역사적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사라진 중심에 그들은 지구대신 스스로를 집어넣게 되었다. 이제 세계의 중심은 ‘나’이며, 따라서 이제 세계는 ‘일원’이 아니라 ‘다원’이 되었다. 누구든 세계의 중심이 될 수 있으며, 어느 누구도 나 외에 중요하거나 소중한 것은 있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러한 ‘탈 일원적 세계체험’은 종교의 세계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그리고 그것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사건이 종교개혁이다. 이제 종교생활에서도 조직보다는 개인이 중심을 차지하게 된다. 신을 만나는데 조직이 우선적이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종교 개혁가들은 힘주어 외쳤다. ‘교회를 꼭 나갈 필요는 없다!’, ‘매번 주일마다 성당에 나가 예배를 드린다고 은총이나 구원이 임하는 것은 아니다!’, ‘연보에 헌금을 넣는다고 죄 사함이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강력한 외침은 실상 종교생활에서 조직을 해체하고 개인을 중심에 두고자 함이었다. 결국 이 운동은 정치적으로는 부분적 성공을 거두게 되지만, 그 여파는 서구 사회 전체에 큰 변화를 일으키게 된다. 즉 본격적인 개인주의의 시작이다. 신 앞에 홀로서는 존재로서 인간! 이제 어느 누구도 내 신앙의 문제를 대신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신앙은 오로지 신과 나 사이의 긴밀한 관계요 고백일 따름이다. 이렇게 종교는 개인의 문제가 되어갔다. 그리고 사실 종교라는 것의 속성이 그러하다. 이렇게 해서 개인의 체험과 영성이 종교의 주요한 화두로 자리를 잡아갔다.
여전히 집단적인 교회, 그리고 사회의 시선들
다시 우리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나는 이미 종교가 가지는 개인적, 혹은 실존적 성향에 대해서 말하였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이 구조가 쉽게 자리를 잡지 못한다. 한국 사회는 타인에게 해가되지 않는 각 개인의 종교행위가 종종 중요한 사회적 이슈, 혹은 아젠다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독특하다. 누가 경기에서 득점을 하고 기도를 하든 말든, 혹은 성호를 표하든 말든, 혹은 경기 후 신을 언급하든 부처님을 언급하든 그건 철저히 개인의 문제이다. 물론 그 행위와 언어에 대한 개인적인 선호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사회적 여론을 통해 그 행위 자체를 공개적으로 문제 삼는 것은 무언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할 것이다. 즉 내 눈에 이는 우리 사회가 가지는 집단주의적 성향의 발로처럼 보이기도 한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하는 행위가 타인에게 구체적으로 물리적 피해를 조장하지 않는다면 그는 그 행위를 그만둬야만 한다는 강요를 받을 필요도 의무도 없다. 이 매우 간단한 사실을 왜 우리 사회는 너무 쉽게 망각하는 것인가. ‘모난 돌이 정을 먼저 맞는다!’고 뭔가 조직과 집단에서 튀는 것처럼 보이고, 또 전체에 비추어 다른 행동을 보이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려는, 혹 다른 색깔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여겨지는 대상들을 토닥여 하나의 색깔로 만들려는 집단성이 이런 사회적 아젠다의 큰 동기는 아닐는지!
알게 모르게 우리는 다른 색에 대한 관용을 잊고 지낸다. 하나의 목소리, 하나의 행동, 하나의 가치관에만 너무 쉽게 몰두하지는 않는지. 그리고 그 하나의 가치에는 민족주의라는 옷이 입혀져 있지는 않은지. 그리고 그것이 극히 개인적이어야 할 종교생활에도 스스로와 다른 이를 재단하는 규범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그런데 이와 같은 집단주의적 질병은 개신교 밖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더 심한 정도로 한국 개신교 안에 스스로를 규정하는 강력한 시선으로 작동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한국 개신교 스스로 적잖은 무리수를 실제로 두고 있기도 하다. 한국 개신교의 많은 구성원들 역시 종교라는 세계의 실존성과 개인적 성향을 쉽게 잊는다. 그래서 쉽게 타인과 구별되는 이념의 덩어리를 형성한 채 그것을 ‘암기’하는 것이 곧 신앙인 것처럼 오해하고 착각한다. ‘동일한’ 목표와 ‘동일한’ 신앙대상, 그리고 ‘동일한’ 신앙내용을 지녔음을 강조하고, 또 동일치 않는 대상들에 대한 딱지붙이기에 여념이 없다. 그리고 동일한 가치를 지닌 자신들의 공동체 이외의 것에 대해서는 강한 ‘구별감’과 ‘차별의식’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이러한 목적의식이 타 문화권과 관계 할 때는 쉽게 제국주의적 태도로 나타내게 만든다. 그리고 이런 경향은 안과 밖에서 동일하다. 즉 외국의 문화와 문물뿐만 아니라, 동일한 문화권 내라 할지라도 자신들의 이념덩어리와 일치하지 않으면 쉽게 선을 긋고 자 하는 의식의 등장이 그것이다.
이런 자폐적 자의식은 지속적으로 한국 사회 구성원들과 충돌을 일으키게 만들었다. 왜냐하면 한국 사회의 다수 역시 자신들의 자폐적 세계관에 충실한 ‘세속적 종교인’들이기 때문이다. ‘민족’과 ‘한국’이란 이름으로 울타리를 치는 이들과 ‘같은 신앙’이란 표지로 금을 긋는 이들과는 이곳저곳에서 충돌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들 역시 모두 실수하고 있다는 점에서 둘 다 예외는 아니다. 모두 하나 이외의 다른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지극히 폐쇄적 가치관에 함몰된 상태에서 나오는 행위의 결과물들일뿐이다.
혹자는 나의 이런 진단을 양비론적이다 규정지으려 할 것이다. 하지만 이는 양비론이 아니다. 나는 오직 하나의 대상만을 목표로 삼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종교를 개인의 영역으로 보지 않으려는 ‘하나의’ 시각이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그 시각은 종교를 사이에 두고 안과 밖이 하나로 이어져 있다. 종교에 속한 사람이나, 특정 종교에 타격을 가하려는 이들 모두 종교를 개인이 아닌 집단의 그 무엇, 하나의 색깔 속에 가두어 두려는 심사는 동일하다는 것이 나의 관찰이다. 그리고 그러한 행위는 결국 종교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결과물일 뿐이라는 것이 또한 나의 잠정적 결론이다.
그리스도교 전통이 유일하신 분을 신앙한다 하더라도, 종교개혁 이후 그것은 신과 조직과의 관계로 이해하지는 않는다. 즉 그리스도교 신앙이라고 하는 것이 유일하신 분과 특별한 조직을 이룬 인간 공동체와의 ‘1대 다多’적인 관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1대 조직’이 아니라, ‘1대 1의 수많은 연속’일 따름이다. 그러므로 같은 전통 내에 속해있는 신앙인이라 하더라도 고백하는 신의 세세한 내용이 동일하다는 규범적 선언은 감히 함부로 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고백의 대상이 되는 신의 존재론적 동일성은 부인할 수 없겠지만, 그 신을 생활 속에서 신앙하는 이들의 세밀한 개별적 차이를 한 색으로 통일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근사치 속에서 신앙의 유대감을 갖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신앙의 행태와 자세에 대해 하나의 모습을 강요하는 것은 그것이 안이든 밖이든 또 다른 이름의 폭력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속적인 하나의 색깔을 강요하는 우리 사회와 교회는 잠정적으로 폭력의 주체요 또 대상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길용/종교학, 서울신학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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