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75)
“뭘 해도 농사보다야 못하겠어요?”
버스에서 정용하 씨를 만났다. 작은 가방을 어깨에 둘러매고 있었다. 용하 씨는 요즘 문막농공단지에 취직을 하여 다니고 있다.
기골이 장대한, 30대 중반이긴 하지만 작실마을에선 힘쓸만한 몇 안 되는 젊은이였는데 농사를 그만두고 얼마 전에 취직을 했다.
“힘들지 않아요?”
버스에서 내려 같이 들어오며 용하 씨에게 물었다.
“할만 해요. 근데 딴 건 다 괜찮은데 배고파서 힘들어요. 새참 먹던 버릇이 있어 그런가 봐요.”
웃으면 두 눈이 감기는 그 너털웃음을 웃으며 그렇게 대답했다. 그러나 흙 일궈 삼십년 넘게 살아온 사람이 공장에 나가 쇠를 깎는다는 게 어찌 할 만 한 일이겠는가. 어머니 가슴 같은 흙 일구던 손으로 쇳조각을 깎아대니, 어찌 힘든 게 배고픈 것뿐이겠는가.
갈림길에서 교회로 들어설 때 인사처럼 남긴 용하 씨의 한 마디가 내 걸음을 멈춰 세웠다.
“뭘 해도 농사보다야 못하겠어요?”
빈 도시락 덜렁이는 빈 가방 둘러맨 채 팔자걸음으로 오르는 용하 씨. 지게 지고 경운기 끌고 싫도록 오르내리던 작실길.
-<얘기마을> (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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