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얘기마을(98)
이상한 마라톤
단강으로 목회를 떠나올 때 몇몇 분들이 좋은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첫 목회지이기도 하고 첫 목회지가 농촌이기도 한지라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들이 적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중 아직도 기억하는 말이 ‘농촌 목회는 마라톤이다’라는 말입니다. 농촌목회를 하고 있던 한 선배의 이야기입니다. 단거리가 아닌 마라톤이라고, 농촌목회를 마라톤에 빗대었습니다.
단거리는 잠깐만 뛰면 되니까 있는 힘을 다한다, 그렇지만 마라톤은 다르다, 한참을 뛰어야 한다, 그러기에 필요한 것이 체력안배다, 무엇인가를 단 번에 해내려고 덤비다간 자칫 제풀에 지쳐 쓰러지고 만다, 그런 뜻이었습니다.
햇수로 4년, 그동안 농촌에서 목회를 한 짧은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농촌 목회는 마라톤이다’라는 말은 꽤 정확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자칫 지루해 포기하고 싶고, 자칫 덤비다가 지치기 쉬운 생활. 별다른 일 없이 견디자니 게을러지기 쉽고, 그런 자신이 괴롭고, 그렇다고 땀 흘려 일하자니 조건이 열악하고, 참으로 힘을 안배하는 일이 어렵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농촌목회란 마라톤은 마라톤이되 이상한 마라톤입니다. 어디가 결승점인지, 지금 내가 어디쯤 달리고 있는지, 길의 사정이 어떤지 가늠할 수가 없습니다. 달리는 길 가에 서서 박수로 격려하는 이들도, 땀 닦으라며 물수건 건네는 이들도 없어 때로는 길을 잘 못 들어선 건 아닌가 싶어지기도 합니다. 먼 거리를 뛰는 체력의 한계도 한계지만, 길조차 잘못 들어선 것 아닌가 하는 맘 속 어이없는 갈등도 쉽지 않은 것입니다.
지금도 이 땅엔 이상한 마라톤을 뛰는 이들이 곳곳에 있습니다. 등수와는 상관없이, 어디 보이지도 않는 결승점을 향해, 그저 묵묵히 달리는 이들이 있습니다.
가끔씩이라도 그분들께 박수를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달리고 있는 그 길이 코스에서 벗어난 길이 아니라는 단지 그 하나만을 일러주기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어쩌면 마라토너에겐 그것 하나면 족할지도 모릅니다.
-<얘기마을> (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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