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서리

한희철의 얘기마을(97)


밤 서리


동네 형, 친구와 같이 장안말 산에 오른 건 밤을 따기 위해서였다. 가을 산에는 먹을 게 많았고 그건 단순히 먹을 걸 지나 보석과 같은 것이었다.


신나게 밤을 털고 있는데 갑자기 “이놈들!” 하는 호령 소리가 들려왔다. 산 주인이었다. 놀란 우리들은 정신없이 도망을 쳤다. 하필 주인 있는 밤나무를 털었던 것이다. 한참을 산 아래로 내려와 헉헉 숨을 몰아쉬며 주저앉았다. 잡히지 않은 것과 제법 자루를 채운 밤이 다행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정신없이 도망을 치느라 친구가 신발 한 짝을 어디엔가 잃어버린 것이었다. 검정고무신이었지만 신을 잃고 가면 집에서 혼날 거라며 친구는 울먹울먹했다.


그때 동네 형이 제안을 했다. 내가 가서 신발을 찾아오겠다, 대신 오늘 딴 밤은 모두 내 차지다. 했던 것이다.  


어쩔 수 없었다. 우리는 산 주인이 무서워 신을 찾으러 갈 엄두가 안 났던 것이다. 결국 형은 친구의 신발을 찾아와 밤을 모두 차지했고, 우리에게는 까먹으라고 몇 알씩 나누어 주었을 뿐이었다.


말은 못했지만 신발을 잃어버린 건 친구였는데 친구와 같이 밤을 모두 내놓은 것이 못내 억울했다.  


같이 책임을 진다는 것은 불이익을 나누는 것이다. 지금도 두 사람의 이름이 또렷한 어릴 적 한 기억은 지금도 그렇게 가르친다. 


-<얘기마을> (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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