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만큼 따뜻하게

한희철의 얘기마을(99)


아픈 만큼 따뜻하게


끝내 집사님은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애써 웃음으로 견디던 감정의 둑이 한 순간 터져 엉엉 울었다. 


고만고만한 보따리 몇 개 좁다란 마루에 쌓아놓고 무릎 맞대고 둘러앉아 드린 이사 예배. 주기도문으로 예배를 마치고 집사님 손 아무 말 없이 잡았을 때, 집사님은 잡은 손을 움켜쥐곤 바닥에 쓰러져 둑 무너진 듯 울었다. 그렇게 울고 떠나면 안 좋다고, 옆의 교우들 한참을 달랬지만 울음은 그칠 줄 몰랐다.


쓰리고 아린 세월. 잠시라도 약해지면 무너지고 만다는 걸 잘 알기에 덤덤히, 때로는 우악스럽게 지켜온 지난날의 설움과 아픔이 막상 떠나는 시간이 되어선 와락 밀물처럼 밀려들었던 것이다. 


어린 아들 데리고 하루하루 고된 품을 팔아 끊어질 듯 이어 온 위태했던 삶, 질곡의 땅 질곡의 시간, 단강을 떠나는 것이다. 아무도 그 눈물 쉬 말릴 수 없었다. 신집사님은 그렇게 퉁퉁 부은 눈으로 단강을 떠났다.




다음날 주일 예배를 드리는 우리들 마음이 참으로 착잡했다. 가뜩이나 적은 교인인데 연초 안집사님에 이어 신집사님도 이사를 떠난 것이다. 유집사님은 기도를 하며 남은 빈자리를 잘 지키게 해달라고, 한 명이 떠났지만 열 명으로 채울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잘 견디자고, 이게 농촌교회가 져야 할 십자가라면 그냥 지자고, 어쩜 우린 더 어려워질 수도 있고, 그렇더라도 낙망해선 안 된다고, 집사님의 이사 소식을 알리며 그런 얘길 덧붙였다. 내 자신에게 들려주듯이.


예배를 드리며 자꾸 눈은 집사님 늘 앉던 그 자리에 함정 빠지듯 고꾸라지곤 했다. 봄철 따뜻한 볕에 흙벽 후둑후둑 녹아내리듯 마음 한 구석이 그렇게 무너지며 어렵게 한 주일은 갔다. 우린 점점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인지, 두렵기도 했다.


새로 맞은 주일, 사순절 절기의 첫 주였던 그 날의 설교 제목은 ‘많은 중에 우린 조금만 남았지만’이었다. 많은 중에 우린 조금만 남았지만 갈 길과 할 일을 가르쳐 달라 했던 이스라엘의 다급함과 그 다급함 속에 숨겨져 있는 거짓됨을 아울러 생각했다.


그런데 그날 저녁, 생각지 못했던 두 분이 새로 교회에 나왔다. 끝정자에 살고 있는 김기봉, 최동해 부부. 두 분 역시 어려운 이웃이지만 그건 분명 하나님의 배려였다. 인도한 안갑순 속장님을 따라 나란히 옆에 앉으신 두 분. 두 사람이 앉아 있는 그 자리는 떠난 신집사님이 늘 앉던 그 자리 아닌가.

박수로 환영하는 우리들 마음이 기뻤고, 한편으론 아팠고, 그런 만큼 우리는 더욱 힘차고 따뜻하게 두 사람을 맞았다. 


-<얘기마을> (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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