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는 날엔

신동숙의 글밭(244)


비가 내리는 날엔




비가 내리는 날엔

다가오지 않은 미래보다는 


저 멀고도 아득한 

옛날이 가슴을 두드립니다


기억하지 못하는

끝이 보이지 않는 


가슴 밑바닥으로부터

그리움이 밀물처럼 차오릅니다


빗방울이 떨어진 자리마다 

흙이 패이고 


흙탕물이 고이고

가슴은 질퍽해져 뒤죽박죽이지만


끊임없이 내려앉는 빗소리에

마음은 땅으로 낮아집니다


빗물이 처음 발길 닿은 곳에 

잠시 고였다가


이윽코 낮은 곳으로 흘러내리듯

가슴은 이 세상 가장 낮은 곳을 더듬습니다


비가 내리는 날엔

빗방울처럼 연약해진 가슴이


잘게 부서져 내리는

연약하고 낮은 가슴을 지닌 이들을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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