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얘기마을(113)
편지
가끔씩 편지를 받습니다. 한낮, 하루 한 번 들리는 집배원 아저씨를 통해 신문을 비롯한 이런 저런 우편물들을 전해 받습니다.
그 중 반가운 게 편지입니다. 신문, 주보 등 각종 인쇄물 또한 적지 않은 읽을거리지만 편지만큼의 즐거움은 되지 못합니다. 찬찬히 서로의 안부를 묻고, 가슴 속 쌓인 이야기를 전하는 정겨움을 어찌 다른 것에 비기겠습니까.
‘보고 싶은 ㅇㅇ에게’ 그렇게 시작되는 편지를 읽으면 산만했던 내가 하나로 모이고, 잊혔던 내가 되찾아져 맑게 눈이 뜨입니다. 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 어느새 맘속으로 찾아와 더 없이 그리운 사람이 되어 나와 마주합니다.
가끔씩 편지를 씁니다. 군 생활할 때 정한 원칙 중 하나가 편지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먼저 쓰진 못해도 최소한 답장은 꼭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훈련에 근무에 편지 쓰기가 쉽지 않은 군 생활, 스스로 정한 원칙을 지키기 위해 늦은 밤 손전등 불빛 아래 엎드린 적이 적지 않습니다. 그때에 비한다면 지금은 모든 게 자유롭고 시간 또한 넉넉한데도 오히려 편지에는 게을러진 셈입니다.
서너 줄 쓰고 나면 더 이상 쓸 말이 없어 결국 그만두고 만다고 친구는 말합니다. 어디 친구뿐이겠습니까. 참 많은 사람들이 편지 쓰기를 두려워하고 끝내는 못쓰고 있습니다. 문명의 이기는 편리함을 주는 대가로 사람 사이를 멀게 했는지도 모릅니다. 게으름은 전화마저도 쉽지 않게 만들지만, 전화만큼 우리 사이의 정을 알 듯 모르게 앗아간 것도 드물 것입니다.
전화는 대개 쉬운 핑계로 존재하며, 멀어진 서로의 사이를 편리로 꿰매는 서툰 돌팔이 의사 구실을 할 때가 많습니다. 적어도 편지에 비한다면 말입니다.
“오늘은 시간이 없어 편지가 길어졌습니다.” 했던, 오랫동안 갇혀있던 한 분의 나직한 고백은 더욱 편지의 뜻과 맛을 깊게 해주고 있습니다.
적지 않은 전화, 적지 않은 인쇄물 속 따뜻한 체온으로 전해지는 건 편지, 손으로 마음으로 쓴 편지뿐입니다.
-<얘기마을> (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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