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얘기마을(114)
상처
누군가를 만난다는 건 힘든 일이지 싶어 저녁 어스름, 강가로 나갔다.
모질게 할퀸 상처처럼 형편없이 망가진 널따란 강가 밭,
기름진 검은 흙은 어디로 가고 속뼈처럼 자갈들이 드러났다.
조금 위쪽에 있는 밭엔 모래가 두껍게 덮였다.
도무지 치유가 불가능해 보이는, 아물 길 보이지 않는 깊은 상처들.
한참을 강가 밭에 섰다가 주르르 두 눈이 젖고 만다.
무심하고 막막한 세월.
웬 인기척에 뒤돌아서니 저만치 동네 노인 한분이 뒷짐을 진 채 망가진 밭을 서성인다.
슬그머니 자릴 피한다.
눈물도 만남도 죄스러워서.
-<얘기마을> (1991년)
'한희철의 '두런두런' > 한희철의 얘기마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탕 (0) | 2020.10.16 |
---|---|
오토바이를 버리라고요? (0) | 2020.10.15 |
편지 (0) | 2020.10.13 |
소 (0) | 2020.10.12 |
미더운 친구 (0) | 2020.10.1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