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얘기마을(120)
가장 좋은 설교
농촌목회를 하면서 느끼게 되는 어려움 중 그중 큰 것이 설교입니다. 설교란 모든 목회자가 한결같이 느끼는 어려움이겠지만, 농촌에서는 더욱 더 어려움을 느끼게 됩니다. 까짓 서너 명 모일 때가 많은데 뭔 어려움이냐 할지 모릅니다. 사실 도시 교회에 비한다면 농촌교회는 지극히 단순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요구가 있는 것도 아니요 논리적이고 신학적인 내용을 필요로 하는 것도 아닙니다. 적은 교인이 피곤한 몸으로 참석하여 그나마 피곤을 이기지 못하면 꾸벅꾸벅 졸기 일쑤, 적당히 때워(?) 넘겨도 되지 않겠냐는 생각이 유혹처럼 들 때가 많습니다. 그런 점이 어렵습니다.
말씀을 사모하며 기다려온 사람들이 빛나는 눈빛으로 설교자를 응시하고, 구절구절 고개를 끄덕이며 아멘으로 화답할 때 설교자는 신(?)이 나고 다음 설교를 정성으로 준비할 것입니다. 정성껏 말씀을 준비하지만 몇몇 지친 시선뿐 아무런 울림이 없을 때 느끼게 되는 공허함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닙니다. 군데군데 빈자리는 함정과도 같아서 쉽게 시선과 마음을 빼앗기곤 합니다.
엉성한 원고와 채 정리되지 않은 어수선한 생각으로 설 때가 많습니다. 어떤 때는 준비한 말씀을 접고, 주어진 모습에 걸맞는 말씀을 찾아 넋두리조로 이야기할 때도 있습니다. ‘축복’과 ‘은총’이라는 말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진 농촌의 현실, 본문 찾기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좋은 말씀과 예화가 현실과 동떨어진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저런 이유로 농촌 목회자에게 설교는 나태해지기 쉬운 일이 됩니다. 주어진 상황에 관계없이 성실하게 말씀을 준비한다고 하는 것, 빈자리의 아픔과 허전함을 믿음으로 이긴다고 하는 것이 명분 있는 큰 고통에 비해 얼마나 견디기 어려운 것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만큼 중요한 것이기도 합니다. 설교시간은 무엇보다도 내가 하나님 앞에 서는 시간이요 내 신앙고백을 하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작은 일도 크게 보는, 사소한 일도 애정을 가지고 대하는 훈련을 해야 하며 말씀에 숨겨진 또 하나의 뜻을 캐는 노력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가장 좋은 설교는 일상 속에서 지치고 외로운 이웃들과 어떤 삶을 나누느냐 하는 것일 겁니다. 그게 설교라는 것을 농촌으로 떠나온 지 몇 년 지난 요즘에서야 조금씩 깨닫게 됩니다.
-<얘기마을> (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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