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얘기마을(129)
끌개
벌써 며칠 째인지 모릅니다. 할아버지 한 분이 소를 끌고선 아스팔트 위를 왔다 갔다 합니다. 소 등엔 멍에가 얹혔고, 멍에엔 커다란 돌멩이를 올린 나무 막대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른바 ‘끌개’를 끌며 소가 일을 배우고 있는 중입니다.
등 뒤에 늘어진 끌개의 무게를 견디며 소는 묵묵히 걸어갑니다. 일소가 되기 위해선 배워야 할 게 많아 일철 앞두고 소가 일을 열심히 배우는 것입니다. 일소가 되기 위해 등 뒤의 무게를 견디며 천천히 걷는 연습을 하는 소, 며칠 동안 끌개를 끌며 일 배우는 소를 보는 마음이 숙연합니다.
내게 주어진 임의 밭을 갈기 위해 끌어야 할 끌개가 내게도 있습니다. 쉽지 않은 무게를 견디며 많은 시간 끌개를 끌어야 합니다. 이 밭에서 저 밭으로 소가 함부로 뛰는 건 제대로 끌개를 끌지 않은 탓입니다.
쉽게 마치려 하고 쉽게 벗으려 하는 내 끌개를, 끌개 끄는 우직한 소는 묵묵함으로 질책하고 있습니다.
-<얘기마을> (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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