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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한희철의 얘기마을

변소

by 한종호 2020. 10. 28.

한희철의 얘기마을(127)


변소


언젠가 아내의 친구가 단강에 들린 적이 있었습니다. 와서 지내다 아내에게 화장실을 물었습니다. 그런데 들어가더니 고개를 흔들며 “여기 아닌데” 하며 그냥 나오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배를 잡고 웃었지만 허름한 공간 안 땅바닥에 돌멩이 두 개만 달랑 놓여 있었으니, 도시 생활에 익숙한 친구로선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이제는 누구네를 가도 익숙해졌지만 저도 단강에 처음 왔을 땐 변소 때문에 당황했었습니다. 들어가 보니 한쪽 구석에 돌멩이 두 개만 놓여 있었던 것입니다. 잠시 생각하다 틀리지 않게 일을 보긴 했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수세식에 익숙해진 터에 돌멩이에 올라앉아 맨땅 위에 일을 본다는 것은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가장 편해야 할 그 자리가 불편한 자리가 되고 말았고, 다시 편한 자리가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단강의 변소는 대개가 그러합니다. 무엇보다 모양이 허술합니다. 구멍이 숭숭 뚫려 밖이 보이기도 하고, 휘휘 바람이 자유롭게 통하는 헛간 같은 곳입니다.


구조도 간단합니다. 웬만큼 넓적한 돌멩이 두 개만 있으면 되고, 그 뒤에 재나 겨를 쌓아두면 됩니다. 삽이나 넓적한 나무를 귀퉁이에 세워두면 더 이상은 필요한 게 없습니다.


큰일을 보고 나면 뒤에 있는 재나 겨를 변 위에 뿌리고 다시 뒤편으로 밀어내면 됩니다. 그렇게 쌓인 것들은 나중 좋은 거름이 됩니다.


맨땅 위 김이 허옇게 오르는 것을 막대기로 치우는 데는 비위가 약해서는 안 됩니다. 침을 꿀떡 삼키고는 후딱 처치를 합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조금 우스운 일입니다. 결국 자기가 먹은 것 자기가 싸는 것인데,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낸 몸속에 있었던 것입니다. 모양이 그렇고 냄새가 그렇지 그 모든 게 선입견만 버리면 더러울 게 하나 없는 것입니다. 먹고 싸고, 싼 것을 다시 먹거리를 위해 거름으로 쓰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인 것입니다. 


요즘 동네에 변소개량 작업이 벌어졌습니다. 시커먼 플라스틱 통을 땅에 묻고 번듯한 변소를 짓는 것입니다. 듣기로는 나라에서 반 보조가 있어 반만 부담하면 된다 합니다.


그게 필요한 일임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아쉬움이 없는 게 아닙니다. 편리를 내세워 우리가 잃어버린 소중한 것들이 적지 않음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제가 눈 똥, 제가 확인해 모았다가 제 먹거리 위해 쓰는 삶의 자연스러운 과정을 이젠 쉬 찾아볼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원시적이고 미개하다 할진 몰라도 그간 몸에 익은 탓인지 뭔가 아쉬움도 남습니다.


-<얘기마을> (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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