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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숙의 글밭/하루에 한 걸음 한 마음

제 기도의 응답도 [사랑]입니다

by 한종호 2020. 11. 16.

신동숙의 글밭(277)


제 기도의 응답도 [사랑]입니다


"엄마, 울어요?"

"아빠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마술 카드 사주기로 했어요. 그런데 엄마, 왜 울어요?"


늦은 밤에 책상에서 울다가 아들한테 들키고 말았습니다. 친정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장례식장에서도 눈물보다는 지인 목사님을 모셔서 천국 천도의 예배를 드리고 챙기느라 제겐 눈물을 흘릴 경황이 없었습니다.


 "아빠, 예수님 손 잡고 가세요."를 삼일장 내내 호흡처럼 주문처럼 기도처럼 속으로 되뇌었습니다. 곁에서 어쩔줄 몰라하시던 친정 엄마께도 그 한 문장만 가르쳐드렸습니다. 그냥 지금까지도 혼자 있을 때면, 운전을 하다가도 아버지가 생각 나서 울컥할 뿐입니다. 


가족들 앞에서 좀체 보인 적이 없던 엄마의 눈물은 아들의 눈에는 놀라움이었을 겁니다. 자정이 다 된 무렵 아빠로부터 약속 받은 이번 크리스마스 선물 자랑을 하려고, 엄마의 방으로 무심코 들어왔던 아들이 보게 된 엄마의 눈물은, (고)이태석 신부님의 <묵상>이라는 시와 곡을 편곡하여 시노래 가수 박경하님의 음성으로 듣다가 일어난 일입니다. 


어제 함께한 이태석 신부님 기념관에서 첫 발표를 하던 이 노래의 첫 소절부터 터진 눈물이 온종일 눈에서 가슴 밑에서 흐릅니다. 이태석 신부님의 <묵상>이라는 시를 함께 나누려 합니다. 




<묵상>


이태석 詩.曲 \ 박경하 시노래

...


십자가 앞에 꿇어 

주께 물었네. 오~ 오


추위와 굶주림에서 시달리는 이들

총부리 앞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이들을

왜 당신은 보고만 있냐고


눈물을 흘리면서 주께 물었네

세상엔 죄인들과 닫힌 감옥이 있어야만 하고

인간은 고통 속에서 번민해야 하느냐고


조용한 침묵 속에서 

주님 말씀하셨지


사랑 사랑 사랑 

오직 서로 사랑하라고


난 영원히 기도하리라 

세계 평화 위해 


난 사랑하리라

내 모든 것 바쳐


난 영원히 기도하리라

세계 평화 위해 


난 사랑하리라

내 모든 것 바쳐


...


의견이 분분하지만 대략 이 <묵상>이라는 시가 지어진 시점은 이태석 신부님의 중학생 시절이었다고 전해집니다. 중학생이던 이태석 신부님이 바치던 묵상의 기도 중에서 세상의 가장 큰 아픔들을 토로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 옛날 어린 신부님의 눈으로 보신 세상의 추위와 굶주림, 전쟁, 죄인들, 인간의 고통들은, 오늘의 뉴스에서 제가 본 현 실상과 다르지 않습니다. 


과거에도 세상은 아픔과 고통, 어둠과 혼돈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세상은 아픔과 고통, 어둠과 혼돈 속에 허덕이고 있으며, 앞으로도 세상은 아픔과 고통, 어둠과 혼돈 속을 유영할 것임을, 과거에 비추어 조심스레 미래를 짐작해봅니다.


이태석 신부님이 드렸던 같은 기도를, 하느님이 계시다면 세상이 왜 이토록 아픔과 고통, 어둠과 혼돈 속에서 헤어날 수 없는지, 저 역시도 혼자서 몸살을 앓으며 그것이 기도인 줄도 모르고 몇 날 며칠을 녹초가 되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제 나이 스물 한 두 살 때의 일입니다. 


당시 제겐 의지하고 찾을만한 절과 교회도 스승이나 사람 하나도 제 곁에 없었습니다. 마땅히 찾아야 하는 줄도 몰랐기에, 제 방에서 폐인처럼 곧 죽기까지 아파했었습니다. 그것이 기도인 줄도 모르고, 마음 속 가득한 어둠과 혼돈을 침묵 속에서 토로하던 몸부림이었습니다. 


성인이 되고서 보이기 시작하던 세상의 악과 모순들을 보면서 왜 이 지경인지, 자녀가 부모를 부모가 자녀를 헤치는 폐륜 범죄, 돈 때문에 사람이 사람다움을 져버리는 일들, 정의가 뭍히고 거짓이 뒤섞인 이 모든 세상에서 일어나는 것들이 제겐 고스란히 세상의 아픔과 고통, 어둠과 혼돈으로 다가왔었습니다. 그 속에서 헤매이던 일들이 까마득하기만 합니다.


만약에 태초에 어둠과 혼돈이 있었다면, 제겐 태초의 어둠과 혼돈과 같았던 경험입니다. 그렇게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릅니다. 그때 제 안엔 온통 태초의 어둠과 공허와 혼돈 뿐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마치 기도에 응답인 듯 선명히 보이는 것이 있었습니다. 


어둠 속에서 보인 것은 무채색의 작은 낱말 카드에 쓰인 두 글자. [사랑]입니다. 화려한 빛도 아니고 아름다운 형상도 아니고 문장도 음성도 아닌 지극히 단순한 두 글자 [사랑]입니다. 멋 모르는 저의 스타일에 맞춘 눈높이 응답인지도 모릅니다.




[사랑]이라는 두 글자 앞에서 저를 에워싸던 세상의 모든 어둠과 혼돈이 비로소 질서를 잡아가면서, 어디서 온 줄도 모르는 그 두 글자 앞에 그만 주저앉아 엎드려 제 모든 걸 내려놓고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두 글자가 하염없이 고마웠습니다.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던 제게 [사랑]이라는 글자는 앞으로 이 땅을 살아갈 수 있는 희망과 뜻이 되고, 사명과 이유가 되고, 세상에 전하고 나누어야 할 책임이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이 세상에서 가장 온전히 사랑한 자가 누구인지 찾기 시작하였습니다. 


저의 진리를 찾아나선 순례길은 그때 응답 받은 [사랑]이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밤이 아무리 어둡고 침침해도 문득 보인 두 글자처럼, 어딘가에 별 하나 쯤은 있는 법이라는 사실을 그때의 경험으로인해 마음으로 믿는 구석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오늘의 안타까운 뉴스에서, 잠시 탐욕으로 첫 마음이 가리워진 스타 스님이 입고 있는 가사를 보면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모태 신앙과 가족을 떠나 출가를 한다는 결심은 죽음을 각오할 만큼의 결심과 다르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물질과 자본의 부유함은 영혼을 병들게 하기에 선현들은 그토록 가난함을 예찬하며 사랑하기까지 했으리라는 선견지명 앞에 어둔 밤하늘에 별을 본 듯 가난은 구도의 지향점이 됩니다.


마치 터져버린 분노와 정신적 분열로 첫 마음이 가리워진 푸른 눈의 스님을 보면서, 뼈가 아픕니다. 모국과 가족을 떠나 타국에서 진리의 구도자로 살아가려던 결심 또한 죽음을 각오한 굳은 의지가 아니고선 나설 수 없는 나그네길이었을 것입니다.


하버드대와 서양인이라면 벌떼처럼 달려드는 한국의 자본주의와 성공주의로부터 그들이 수행자로써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내면의 힘 또한 잠시 가리운 탐욕의 구름과 터트린 분노 속에 이미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본향으로 나아가는 운수납자의 나그네길에 탐진치, 삼독을 경계하라 하시던 성인들, 성철 스님, 무소유의 법정 스님, 권정생 선생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어둔 세상에 빛나고 있는 별입니다. 


어둠과 혼돈은 지금도 제게 오랜 벗처럼 찾아옵니다. 매일 매 순간 찾아옵니다. 호흡처럼 찾아오기도 합니다. 어느 누구도 매일 찾아오는 어둔 밤과 혼돈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차피 존재하는 그 어둔 밤하늘만 바라보며 세상 한탄만 할 것인지 아니면 그 속에 빛나는 한 점 별빛을 바라볼 것인지 하는 선택의 문제는 우리의 자유 의지에 달렸습니다. 밤이 아무리 어두워도 세상이 아무리 혼돈스럽고 부조리하고 괴롭고 이해되지 않아 보여도, 어딘가에 별 하나는 있는 법입니다.


아무리 아픈 유년기를 보냈다고 하더래도 한 순간 스친 따뜻한 기억 하나만 있다면, 그것은 밤하늘에 뜬 별이 됩니다. 거기서부터 생명의 호흡은 다시 시작됩니다. 바라보고 또 바라보면 점점 커져 밝은 하늘이 되기도 하고, 또 상대적으로 어둠이 커지면 밤하늘의 작은 별로 남기도 합니다. 하지만 윤동주의 별처럼 바람에 스치우더래도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어둠과 혼돈 속에 응답처럼 보여주신 '사랑'이라는 두 글자는 지금도 제 안에서 별빛처럼 때론 환한 대낮처럼 빛나고 있습니다. 제가 이태석 신부님의 <묵상>이라는 시노래를 들으며, 제 기도의 응답과 하나로 겹쳐지면서 늦은밤 아들을 의식하지도 못하고서 눈물을 보였지만, '사랑'이라는 기도의 응답을 사명처럼 받은 뒤로는 제 삶은 거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려 비틀거리면서도 걸어올 수 있었습니다.


제가 의식적으로 만들어낸 환영이었다면 쉬 사라졌을 텐데 말이지요. 가슴 깊이 박힌 두 글자는 이미 가슴에 심겨져 뿌리를 내리며 자라오는 것 같습니다. 여전히 제게 주신 첫 마음을 잃지 않도록 이정표가 되어준 진리의 말씀 또한 빛나고 있습니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마음을 지키라. 모든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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