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참, 보기 좋구나

한희철 얘기마을(150)


거참, 보기 좋구나


아침부터 어둠이 다 내린 저녁까지 사람들이 끊이질 않았다. 한참을 기다려서야 자기 차례가 돌아왔다. 한 사람 끝나면 또 다음 사람, 잠시 쉴 틈이 없었다.


파마를 하는 분도 있었고 머리를 다듬는 분도 있었다. 노인으로부터 아이에 이르기까지 자기 차례를 기다리며 이런저런 이야기에 웃음꽃이 피어나기도 했다. 난로 위에서 끓는 산수유차가 들썩들썩 신이 났다.


원주 선미용실의 서명원 청년, 미용실은 한 달에 두 번 쉰다고 했다. 그 쉬는 날 중의 하루를 택해 아침 일찍 단강을 찾아 함께 예배를 드리고, 마을 분들을 위해 머리손질 봉사를 하는 것이다.


하루 종일 서 있어야 하는 일, 결코 깨끗하다 할 수 없는 다른 이의 머리를 만져야 하는 일, 늘 하던 일을 모처럼 쉬는 날 또다시 반복해야 하는 일. 그러나 어둠이 내리고 마지막 손님이 된 종순이 머리를 다듬기까지 그 밝은 웃음은 변함이 없었다. 



따뜻한 웃음과 따뜻한 이야기. 문득문득 사람들은 그런 삶을 신기해했다. 쉽지 않은 삶의 근원이 무엇일까를 곰곰 생각하기도 했다.


‘나라면 그럴 수 있었을까? 내가 직장인이었다면, 한 달에 두 번 쉬는 직장인이었다면 그 쉬는 날, 난 무얼 하고 있을까? 그 쉬는 날 중 하루를 다른 이를 위해 온전히 쓸 수 있을까?’ 나도 자신이 없었다. 여간한 마음 없인 어림없는 일일 듯싶었다. 


예배당에서 머리를 깎아 미안하다 했지만 십자가 아래서의 아름다운 봉사, 마침 그날이 주님의 고난을 기억하는 종려주일, 주님이 그러시는 것 같았다.


-거 참, 보기 좋구나. 다 끝나고 시간 남거들랑 내 머리도 좀 다듬어 다오. 치렁치렁 땀과 핏방울로 뒤엉켜 헝클어진 이 머리를 좀. 


-<얘기마을> (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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