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숙의 글밭(284)
키워주신 땅에게
키워주신 땅에게 얼만큼 고맙냐구요? 마지막 잎새까지 떨구어, 다 주고도 모자랄 만큼 고맙습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잎새까지 다 내어주고 있는 나무를 바라보고 있으면, 춥고 시린 마음보다는 저 잎들의 초연함 앞에 이제는 가슴 뭉클한 뜨거움이 올라옵니다.
땅으로 돌아가는 가을잎들이 왜 하필이면 세상에서 가장 따스한 빛깔의 옷들로 갈아입었는지, 그 이유를 곰곰이 헤아리다 보면, 여전히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추운 늦가을 밤에도 가슴이 따스하게 환해져옵니다.
때를 따라서 돌아가는 가을잎의 발걸음을 괜스레 재촉하고 있는 가을비와 가을 바람이 마냥 야속하기보다는, 이제는 길벗이 되었다가 재잘거리며 속을 나누는 도반인지도 모릅니다.
가을 바람이 아무리 차가워도, 황금빛 햇살을 걸쳐 입은 나목이 조금은 쓸쓸해 보여도, 수도승처럼 홀가분한 그 모습이 내심 부럽기도 합니다.
키워주신 땅으로 돌아가는 가을잎들의 발걸음이 마치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는 마른풀들의 행진처럼, 불어오는 가을 바람을 따라서 경쾌하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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