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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숙의 글밭/하루에 한 걸음 한 마음

뿌리에서 올라오는 향기

by 한종호 2020. 12. 7.

신동숙의 글밭(289)


뿌리에서 올라오는 향기



나무 꼬챙이로 흙을 파며 놀거나 귀한 잡초를 몰라 보고 뿌리채 뽑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게중에 유난히 뽑히지 않는 게 민들레 뿌리입니다. 


땅 속으로 깊이 내려가는 하나의 굵다란 뿌리를 중심으로 해서 사방으로 뻗친 잔가지들이 잘 다져진 땅 속 흙을 온몸으로 부둥켜 끌어 안고 있는 민들레 뿌리의 그 강인한 생명력과 사투를 벌이다 보면 엉덩방아를 찧기도 합니다.


나중에는 요령이 생겨서 호미나 삽으로 흙을 더 깊이 파 내려가기도 합니다. 흙을 깊이 팔수록 흙에서 올라오는 깊은 향기가 있습니다. 흙내와 엉킨 뿌리에서 올라오는 깊은 근원의 향기가 있습니다.


그 흙내와 뿌리의 향기 앞에서 무장해제 되지 않을 생명이 있을까요? 한 해 살이 식물의 가장 끝향기가 꽃이라면, 뿌리는 언제나 맨 처음 태초의 향기를 머금고서, 모든 생명에게 본향의 그리움을 불러 일으켜 영혼을 일깨워주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살아 있는 생명은 흙에서 멀어질 수록 인간다운 삶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는 선현들의 말씀이 들려오는 듯합니다. 흙에서 멀어지면 생명력과 영혼의 본향과도 점점 멀어지고, 내면의 뜰은 방치된 채 황폐해져 가고 있는 모습이, 어쩌면 오늘날 우리 자녀들이 살아가고 있는 도시 생활인의 모습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으로 쓸쓸한 바람이 붑니다.



지구의 땅에 뿌리를 내리는 모든 식물의 뿌리에서 올라오는 그 깊고 겨울 하늘처럼 아득히 청명한 뿌리의 향내 맡기를 저는 좋아합니다. 무디어진 후각을 일깨워주고 시멘트처럼 단단해진 가슴을 흔들어 놓는 것이 바로 이 뿌리의 향기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도, 향기롭고 아름다운 꽃이 되기보다는 보잘 것 없어 보이지만 뿌리가 되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이 땅에서, 위로 오르며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는 꽃보다는, 아래로 홀로 내려가서 자신을 숨기며 뿌리가 되려는 그런 어진 마음 앞에서, 제 가슴은 흔들립니다. 


그런 이들은 행복을 추구하기보다는 자신에게 주어지는 매 순간을 그저 감사와 감격과 기쁨과 기도로 충만한, 커다란 하늘과 호흡하며 살아가려는 이들입니다.


이처럼 언제나 제 가슴을 흔들어 놓는 이들은, 향긋한 꽃과 풍성하고 달콤한 열매를 탐하며 세상에 드러나는 자들이 아닙니다. 홀로 고독과 침묵 속에서 묵묵히 진리와 진실에 뿌리를 내리는 사람입니다. 


그 깊고 어진 마음을 제 자신이 순간 알아보고선, 그  맑고 깊은 뿌리 곁에 주저 앉아서, 소리 없이 샘솟듯 흐르는 눈물을 흘리며, 지금도 어둔밤처럼 깊고 별처럼 아름다운 밤을 보내기도 합니다.


보이지 않는 진리와 진실에 뿌리를 내리는 그 마음이 고마워서 애틋함으로, 시멘트처럼 무디어지고 단단하던 제 가슴은 보드라운 흙이 됩니다. 조용히 흐르는 눈물은 마른 흙을 적셔 세상으로 흐르는 물길이 되어, 작고 연역한 생명으로 끝까지 흘러가기를, 제 심령이 바라고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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