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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숙의 글밭/하루에 한 걸음 한 마음

우리 마을 속옷 가게

by 한종호 2020. 12. 21.

신동숙의 글밭(292)


우리 마을 속옷 가게


아이들이 태어나서부터 걸음마를 떼기 전까지는 내복으로 사계절을 살았다. 조금 자라선 내복이 실내 활동복이 되기도 하다가, 어느날 문득 잠옷을 입히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찾아간 곳이 큰 도로 건너 우리 마을 속옷 가게다.


손쉬운 인터넷 쇼핑의 저렴한 유혹을 물리치고, 직접 가게로 발걸음한 이유는 직접 눈으로 보고, 옷의 촉감도 느껴 보고, 한 치수 큰 걸로 해서 잠옷이 주는 전체적인 감성과 아이들의 마음을 서로 짝을 지어주듯 직접 이어주고 싶은 마음이 일어서이다. 


자라나는 몸이라고해도 적어도 한두 해 동안은 집 안에서 동고동락해야 하는 옷이 잠옷이 아니던가. 딸아이는 하절기와 동절기 계절에 따라서 잠옷을 바꾸어가며 늘상 입다보니, 나중엔 물이 빠지고 천이 해지기도한다. 그에 반해서 몸에 열이 많은 아들은 잠옷을 입는 날이 많지 않다. 가끔 우리집에 시인이 산다며 팬티만 입고 돌아다니는 아들을 넌지시 가리키기도 하는데, 시인의 성은 '원'이라며.


처음 아이들의 잠옷을 사기 시작한 이후로 줄곧 자라나는 몸에 맞추어 새 잠옷으로 바꾸어 주었는데, 그때마다 찾는 곳은 언제나 우리 동네 속옷 가게다. 그러기를 벌써 십 년이 넘었다. 처음엔 잠옷 한 벌을 고르는데도 한참을 고심하며 골랐다면, 언젠가부터는 고르는 시간이 점점 단축이 되었다. 




어제 고른 잠옷은 먼저 온 손님에게 설명하느라 바쁜 주인의 안내를 기대하지도 않고, 딸아이와 아들의 취향껏 색상을 골라서 치수만 확인을 받았다. 속옷 가게 주인과는 몇 마디 말만 나누어도 아이들의 치수가 금새 나온다. 주인은 내년이면 중학생이 되는 아들의 키가 150센티가 안된다며 걱정하는 마음을 내비친다. 또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내 가르침병 즉 알림병이 도지는 순간이다. 한 마디의 조언이 누군가에겐 인생 팁이 될 수도 있다는 혼자만의 믿음을 아직 저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위안보다는 제나름의 실질적인 팁 하나를 주었다. 우유를 먹되 빵이나 과자 씨리얼과 함께 먹게 해주라는 이야기였다. 서양 사람은 우유 자체만으로는 잘 먹지 않고, 스프를 끓이거나 요리를 해서 먹거나, 씨리얼과 함께 먹는 이유가 소화 흡수와 영양의 균형을 돕기 위함이라며, 저녁밥 지으러 바삐 가야할 저녁 시간을 그렇게 느긋하게 이웃과 대화를 나누며 보내고 있는 내 모습을 깨닫고는 참 싱겁다는 생각도 하면서. 


딸아이는 생각보다 가격이 비싸다며, 인터넷으로 사면 더 저렴할 텐데 하며 훈수를 둔다. 애초에 모르는 바는 아니다. 처음엔 온라인 가격과 비교도 해보며 괜히 비싸게 샀다는 자책이 든 적도 있었다. 온라인 쇼핑 검색에 조금만 시간을 들이면, 조금 더 낮은 가격으로도 최신 유행하는 잠옷을 구할 수는 있겠지만, 온라인 쇼핑과 직접 체험하는 쇼핑과는 같을 수가 없다는 생각은 여전하다. 잠옷 하나를 사는 일에도,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함께 살아가며 나눌 수 있는 삶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는 것이다.


택배 박스가 아닌, 검정 비닐 봉투에 든 엄마가 사다준 잠옷이 반가워서 빨기도 전에, 상표를 떼기도 전에 얼른 입고서 토끼처럼 뛰어다니는 중학생도 이쁘고, 가게에 걸어놓은 옷이라서 한 번 빨아서 입자며 얼른 세탁기에 돌렸는데, 한 시간도 안 되어서 만져보더니 다 마른 것 같다며 걷어 입고서 돌아다니다가 점점 피부로 전해져오는 찬물 기운에 다시 벗어서 널어 두며, 내일 일어나면 온라인 수업할 때 입어야지 하며 원고를 다듬는 엄마 곁에서 잠든 초등학생 고학년도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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