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얘기마을(170)
할머니의 거짓말
누워 계실 줄로 알았던 할머니는 대문가에 나와 앉아 있었다. 남아 있는 독기를 빼낸다며 대야에 흙을 가득 담아 흙 속에 손을 파묻은 채였다. 좀 어떠시냐고 물었을 때 괜찮다고 할머니는 웃었지만, 흙에서 빼낸 손은 괜찮지 않았다. 독기가 검붉게 퍼진 것이 팔뚝까지 뚱뚱 부어 있었다.
서울에 있는 교회 학생부 집회를 다녀오고 나니 어두운 소식 하나가 기다리고 있었다. 허석분 할머니가 뱀에 물린 것이었다. 뒷밭에 잠깐 일하러 나가 김을 매는데, 손끝이 따끔해 보니 뱀이었다. 얼른 흙을 집어 먹으며 뱀을 쫓아가 그놈을 돌로 짓이겨 죽였다. 입으로 물린 데를 빨았는데 입 안 가득 독기가 느껴질 만큼 독이 독했다.
괜찮겠지 참다가 시간이 갈수록 몸이 부어오르자 할 수 없이 한밤중 부론에 있는 차를 불러 병원을 다녀왔다. 잠깐의 치료와 약으로 독기는 쉬 가라앉지 않았다.
콩 흰죽 속에 손을 담그기도 하고, 봉숭아 잎을 찧어 붙이기도 하고, 흙 속에 손을 담그기도 하며 이런저런 동네사람들의 처방을 따라 보지만 어느 것도 신통치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차차 낫겠지유, 뭐.”
옆에서의 안쓰러움과는 달리 할머니는 덤덤하였다. 홀로 사는 할머니 방 달력 숫자에 웬 표시들이 동그랗게 되어 있었다. 동그라미는 모두 열 개였다. 그게 당근 작업한 날 수임을 이내 짐작한다. 빠짐없이 이어지던 동그라미는 할머니가 뱀에 물린 날에 멈춰져 있었다.
옆집을 통해 사고 소식을 알게 된 자식 네들한테는 다 나았다고, 다 나아서 다시 일 댕긴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렇게 할머니는 부기 다 빠지고도 한참을 더 손이 돌아갈 만큼의 아픔을 홀로 참고 있었다.
-<얘기마을> (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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