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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한희철의 얘기마을

뻥튀기 공장

by 한종호 2020. 12. 19.

한희철의 얘기마을(177)


뻥튀기 공장


신작로께 마을 입구에 있던 단무지 창고가 과자 공장으로 바뀌었습니다. 해마다 가을이면 단무지를 절이던 창고가 과자 공장이 되었습니다. 서울에서 과자 공장을 운영하던 이가 단무지 창고를 사 이사를 온 것입니다.


공장이래야 거창한 것이 아닌 뻥튀기를 튀기는 일이지만 나란히 줄맞춰 놓은 기계가 자동으로 돌아가고, 튀긴 뻥튀기는 또 기계를 따라 봉지에 담는 곳까지 자동으로 운반되니, 공장은 분명 공장입니다. ‘뻥!’ 하는 뻥튀기 소리에 놀라기도 하지만 이따금씩 간식 삼아 싼 값에 뻥튀기를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공장 앞에 켜놓은 불이 마을로 들어서는 어둔 길을 비춰줘 밤마다 전에 없던 불빛이 고맙기도 하지만, 과자 공장이 들어서는 것을 보며 그 중 반가웠던 건 마을에 사람이 늘었다는 단순한 사실 때문입니다. 늘 빠져나가기만 하던 동네였는데 이번엔 거꾸로 누군가가 들어왔습니다. 운영하는 이와 일하는 이, 두 가정인데 모두 젊은 부부들입니다.


또 한 가지 반가움은 두 가정 모두 믿는 가정이라는 점입니다. 정근 씨는 서울에서 신앙생활을 할 때 집사 직분까지 받았다 했습니다. 단강에 교회가 세워진 이래로 누군가가 이사 와서 교인이 는 건 처음 있는 일입니다. 얼마나 새삼스러운 일인지요. 떠밀리기만 하던 한 흐름에 버팀목을 괴는 것 같아 반갑기도 하고, 그 일로 마음 한구석 자리하는 든든함도 적지가  않습니다.


‘뻥!’ 소리와 함께 하얗게 피어올라 동네로 퍼져오는 구수한 냄새처럼, 새로 이사 온 서먹함을 이내 지우고 구수한 정 함께 나누는 따뜻한 이웃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얘기마을> (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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