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숙의 글밭(299)
안전한 장소가 뒤바뀐 시대
인간의 역사는 안전한 장소를 찾으려는 탐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천재지변과 야생 동물의 습격으로부터 몸을 피할 수 있는 안전한 장소가 마침 동굴이 되었고, 위험으로부터 벗어나 한숨 돌린 인간은 비로소 동굴벽에 그림을 그릴 여유가 생겼으리라 짐작이 간다.
차츰 주위에 흔한 돌과 나무와 흙을 모아서 움집을 세우고, 한 곳에 터를 잡고 모여 살게 되면서 부락이 형성되고, 세월이 흐를 수록 집의 형태는 더욱 정교해지고, 나아가 집은 하나의 부와 권력의 상징이 되고, 안전한 집터 주변으로 농경과 목축이 발달하면서 잉여물이 생기고, 잉여물은 그보다 더 커다란 권력과 국가를 낳고, 급기야 집은 인생의 목표가 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오늘날의 집은 주거지의 목적에 덧붙여서 잉여를 생산하는 자본가인 건물주를 낳았다.
동굴벽화로부터 시작된 기록의 역사를 주거 환경의 관점에서 그리고 한 개인의 인생 여정으로 비추어 볼 때, 집이란 선사시대부터 오늘날까지 인간다운 삶을 위해 안전하고 번듯한 집과 건물을 마련하기 위한 여정이 되었다. 인생의 꿈을 꾸며 더 나은 교육을 받고 노동을 해서 드디어 마련하고자 하는 목표물인 정착지와 다르지 않았다.
위험한 바깥으로부터 보다 안전한 실내로, 좁은 실내로부터 보다 넓은 실내로, 건물이 주거지의 목적에 덧붙여서 월세가 꼬박꼬박 들어오는 생산의 역할까지 담당하기를 바라는 황금알이 된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었다. 어떻게든 건물은 안정과 자본력과 권력의 상징이 되었다. 하지만, 코로나19는 이런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다.
자연스레 흘러오던 흐름이 뒤바뀐 것이다. 시스템 창호로 밀폐된 실내 공간일 수록, 열심히 환기를 시켜주지 않으면 코로나19 바이러스 전파에는 치명적이다. 대형 교회와 성당과 절이 비대면 예배와 미사와 기도 모임으로 전환하게 된 중요한 이유도 밀폐된 실내 공간이기 때문이다.
비와 바람과 세상의 위협으로부터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주던 가장 안전하다고 믿었던 실내 공간이 이제는 가장 위험한 바이러스 전파지가 된 시절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니, 그야말로 새로운 세상이다. 새로운 세상에 맞추어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기 위해선 초점을 다시 조절해서 맞추어야 할 일이다. 아울러 우리 인생의 목표를 어디에 맞출 것인가? 사람이 살아가는 인생의 목표가 집이 되고 단지 건물주에 머물려는 생각은 영혼이 서글픈 삶이다.
밤늦도록 시내의 번화가가 가장 북적였을 이 연말에, 시내의 거리와 음식점과 주점과 모임을 즐기던 그 모든 실내 공간이 가장 썰렁하고 한산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 서울의 명동이나 부산의 남포동이나 다르지 않다. 반면에 산과 강을 따라 펼쳐진 바깥 세상은 마스크로 무장을 하고 산책 나온 사람들로 줄을 잇는다.
이웃집과 친척집도 식당과 카페도 교회와 성당과 절에도 여행도 실내공간 어디라도 갈 수 없는, 집 안에서만 머물러야 하는 답답한 우리들의 숨통을 틔여줄 장소가 산과 강을 따라 형성된 공원의 산책길인 것이다. 서로의 몸이 부딪히지 않으려 조심스레 지나치는 몸짓에는 모두가 안전하기를 바라는 염원이 깃들어 있을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해서 이제는 실내보다 바깥 세상이 쉼쉬기에 더 안전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슬프기도 하고, 허한 웃음도 난다. 요즘 같으면 비싼 월세를 감당치 못해 어쩔 수 없이 폐업을 해야하는 자영업자들에게 시장의 노점상인들이 더 부러워 보인다고도 하니...
오죽하면 손님을 받을 수 없는 썰렁한 가게 문 밖에서 붕어빵이라도 구워 팔면서 동네 사람들한테 훈기라도 주고 싶다는 얘기가 이 추운 겨울날 하얀 입김처럼 이웃들의 입에서 새어나올까 싶다. 그들의 한숨이 깊다. 새해에는 숨통이 트일만한 좋은 소식들이 봄바람에 꽃씨처럼 날려오면 좋겠다.
또한 다가올 하루하루를 있는 모습 그대로 감사하며 맞이할 수 있는 열린 마음 주시기를 소망한다. 비와 바람과 추위와 땡볕도 감사히 온몸으로 맞이하는 야생의 풀과 꽃과 나무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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