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숙의 글밭(294)
몸이 불편한 자는 출가를 할 수 없는가?
이 글은 한 사람을 생각하며 적는다. 10년 전 가을 그때에 일을 떠올리는 마음이 여전히 무겁기만 하다. 뒷좌석에 두 자녀를 태우고, 남편이 운전을 하고, 나는 조수석에 앉아서 라디오 불교 방송, 고상한 음성이 흘러나오는 정목 스님의 유나방송을 청취하고 있었다.
그때 라디오로 사연이 하나 올라왔다. 스님은 그 사연을 또박또박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사연인 즉, 자신은 젊은 청년이라고 소개를 하며, 하반신이 불편해서 휠체어를 타고 생활을 하고 있으며, 평소 불교 유나방송의 애청자라고 한다. 그러다가 발심이 생겨 출가를 해 부처님 법을 따르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출가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물음이었다.
나 또한 20대 초반에 출가의 뜻을 세운 적이 있었기에, 출가의 발심을 세운 그 청년의 사연이 꼭 나의 일 같아 귀를 세웠다. 그가 출가의 발심을 세우기까지 숱한 어둔 밤을 보냈으리라. 나는 들었고, 청년의 사연을 다 읽은 스님은, 감정의 동요도 비치지 않은 채 결론부터 말씀 드리겠다며...
휠체어 생활을 하는 청년의 발심에 대한 스님의 답변은, 스님의 그 대답을 다시금 떠올려서 지금 이렇게 글로 옮기는 일이 슬프고 아프다. "장애인은 출가를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스님은 이어서 그 이유를 설명한다. 그 이유를 되살려서 내 손으로 적어야 하는 지금 이 순간 내 가슴은 분노한다. 십 년 전 그 일이 되살아나 여전히 분노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잠시 글을 내려놓고 호흡을 보고 있다가 다시금 글을 이어간다. 이어지는 문장은 내 입으로 차마 재생 시키고 싶지 않은 한 비구니 스님의 출가에 대한 생각이다. '멀쩡한 사람이 출가를 해도 세상 사람들을 제도하기가 힘든데, 장애를 가진 사람이 스님이 되면 부처님 법을 포교하는데 어려움이 따릅니다.' 내 기억의 편집으로는 장애인이 출가를 하면 포교가 안 된다는 결론이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에 내 귀를 의심했고, 운전하는 남편에게도 똑같이 들었느냐고 물으니, 앞만 보고 있던 남편은 대답 대신 고개만 한 번 끄덕했다.
정말로 그럴까? 설령 비구니 스님의 그 답변이 반듯한 답변이었다고 해도, 그때처럼 여전히 내 가슴이 왜 이렇게 무겁고 아플까. 생방송으로 전국적으로 전파되던 그 공개된 자리에서 그런 대답을 들었을 그 젊은 청년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 청년이 '너'가 아니라 '나'였다면 어땠을까? 그 청년의 일은 '너'의 일이 아닌 '나'의 일인 것이다. 그가 내 곁에 있었다면, 그게 아니라고 얘기해 주고 싶다. 아니, 바로 그때 차를 세워서 유나방송으로 항의 전화라도 했어야 했다. 지금도 그 일을 두고 아무 것도 하지 못한 나 자신의 부족함과 어리석음에 분노한다. 나는 왜 이렇게 여전히 그 일로 아파하고 분노하는가? 이런 나를 돌아본다.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진 통도사의 금강계단
부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다. 부처님의 제자가 된 두 형제가 있었다. 형 마하반타카는 곧잘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외우고 익혔으나, 동생 주리반타카는 머리가 나빠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지도 외우지도 못하고 돌아서면 까먹는 바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동생을 부끄럽게 여기던 형은 동생에게 '너는 부처님의 제자가 되기 어려우니 그만 집으로 돌아가라'고 한다.
낙심을 하고 담 밑에 앉아 있던 동생 주리반타카에게 다가간 부처님이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손을 잡고 일으켜 세워 그를 데리고 들어가신다. 그리고 그에게 아주 간단한 게송 하나를 가르쳐 주시며, 마당을 쓸면서 외우도록 하셨다. 주리반타카는 부처님이 시키는데로 먼지를 쓸면서, '이 먼지와 함께 나의 번뇌와 마음도 씻겨지길'이라는 게송을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세월이 흘러 바보 주리반타카가 설법을 한다는 소식에 다들 호기심이 생겼다. 뜻밖에 주리반타카가 성공적으로 설법을 마치자 모두가 놀라며 축하하였다. 단순한 염불을 거듭해도 수행이 된 주리반타카는 열심히 정진하여 어느새 상당한 수준에 도달한 것이다. 이처럼 부처님은 각자의 근기에 맞는 가르침으로 살인마도 배신자도 바보도 가리지 않고, 제도를 하시고 깨달음으로 이끄신 것이다.
이것이 부처의 마음이고 예수의 마음이고 부모가 되는 창조주의 마음이 아닐까? 타인이 '너'가 아니고 '나'가 된다면 세상의 모든 답은 풀리게 되어 있다. 어제 한 비구 스님의 글을 읽다가 그때 그 비구니 스님의 덕담을 읽게 된 것이다. 반듯한 일주문이 되어서 많은 이들이 그 반듯한 일주문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반듯한 승려가 되시라는 후배 승려에 대한 선배 승려의 덕담이 그 글의 내용이었다.
부처님의 정법에는 팔정도와 중도 연기법, 참선이 있다. 부처님의 행적과 정법에 따라서, 육체적으로 하반신 장애를 가진 그 청년도 얼마든지 출가 수행을 할 수 있다. 보리수 나무 아래 앉아서 깨달음을 얻으신 부처님처럼, 휠체어에 앉아서 참선 수행을 하면 된다.
확철대오를 하신 성철 스님이나 무문관 시절부터 한 번 앉으면 꼼짝을 안하셔서 절구통 수좌라는 별명이 붙여진 효봉 스님이나 한 소식을 이루신 스님들은 다들 무엇보다 오래 앉았는 참선 수행을 첫째 가는 수행 정진으로 삼으셨다. 부처님의 정법 수행이 바로 오래 앉았는 참선 수행이 아니던가. 그런 면에서 본다면 휠체어는 최적의 좌복이 될 수 있는 이치다. 나머지 부수적인 문제는 하나씩 풀어가면 된다.
석가모니와 예수가 이 세상에 오셔서 보이신 마음은 자비와 긍휼이다. 자비의 사랑이 없다면, 불쌍히 여기는 긍휼의 마음이 없다면, 그런 출가자가 걷는 구도의 순례길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오늘도 나는 묻고 또 묻는다. '너'가 아닌 '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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