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얘기마을(191)
마음의 병
지 집사님이 몸살을 되게 앓았다. 찾아 갔을 땐 정말 눈이 십리나 들어가 있었다. 워낙 마른 분이 꼼짝없이 앓아누우니 얼굴이 말이 아니었다. 몸을 무너뜨리는 오한도 심했지만 허리통증으로 집사님은 꼼짝을 못했다. 경운기에 겨우 실려 아랫말 보건소에 몇 번 다녀왔을 뿐이었다.
다음날 다시 찾았을 땐 빈 집인 줄 알았다. 한참을 불러도 기척이 없어 병원에라도 다니러 갔나 돌아서려는데, 방안에서 마른기침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문을 여니 한낮에도 어두컴컴한 방, 집사님은 두꺼운 이불 속에 혼자 누워 있었다. 전날에 비해 아무런 차도가 없었다.
병원이 있는 원주까진 백리길, 마을 보건소에라도 다시 다녀와야 되지 않느냐고 하자 집사님의 한숨이 길다. 그나마 막내 종근이가 있어 전날만 해도 경운기 타고 보건소에 다녀왔는데 그새 종근이가 서울로 떠났다는 것이었다.
아픈 엄마를 집안에 두고선 도시로 떠난 막내아들. 하긴 고등학교 졸업하고 그냥저냥 집안일을 돕는 막내를 볼 때마다 좋은 일자리 구해야지 바라기도 했고, 여기저기 일자리를 안 알아본 것 아니면서도 막상 그렇게 막내마저 떠나자 아픈 몸에 허전함까지 겹쳐 집사님은 자신을 추스를 힘을 맥없이 놓쳐버리고 있었다.
누구보다 착해 엄마 말 언제 한번 거역함 없던 막내가 무엇 그리 급하다고 아픈 엄마를 두고, 아파 꼼짝을 못하는 엄마를 두고 먼 길을 떠났을까. 군에 입대할 때까지라도 집에서 집안 일 거들면 한 달에 용돈 삼아 20만 원씩 막내에게 부치겠다고 형들이 그랬다는데, 그런 형들의 제안조차 미덥지 못했던 것일까.
며칠 고생 끝에 집사님은 일어났다. 널려있는 일감을 두고서는 더는 앓아누울 겨를이 없어 채 회복 되지 못한 몸을 스스로 일으켰다.
몸은 일으켰지만 훌쩍 떠난 후론 아직 따로 연락이 없는 막내. 집사님의 병은 마음으로 더욱 깊게 도지고 있었다.
-<얘기마을> (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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