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얘기마을(202)
은희 할머니
이애경 그림
은희 할머니가 쌀을 가지고 오셨다. 제법 큰 양동이 가득 하얀 쌀을 머리에 이고 오셨다. 새로 방아를 찧었다며 쌀을 가져오신 것이다.
교인이 아니면서도 그렇게 꼬박꼬박 당신의 정성을 전하시는 할머니. 마루에 앉아 차 한 잔을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연극을 연출하는 이가 고생 고생하는 역을 할머니에게 맡긴 듯, 그런 모진 역을 내 역이다 한평생의 삶으로 맡아 오신 할머니의 생.
할머니의 주름과 백발 위엔 말로 못할 삶의 무게와 엄숙함이 무겁게 배어 있었다.
“나 죽는 건 하나도 아깝지 않아요. 어린 것들 나 죽으면 으뜩하나, 그게 걱정이지요.”
어린 손녀들이 빨리빨리 커야 할 텐데, 어려서부터라도 제 앞가림을 잘해야 할 텐데, 그들을 위해서라고 할머니는 약해질 수가 없다. 허리가 굽을 대로 굽어 저러단 땅에 닿지 싶은, 허리가 땅에 닿아야만 땅에서 일손 놓으실, 은희 할머니.
-<얘기마을> (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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